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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월요일의 직무

 

커피향이 부서지는 오전 7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가 덜 깬 잠을 흔든다. 부엌 창을 열자 신선한 월요일 아침이 배달된다. 이제 막 초여름이 시작되는 계절. 잠을 털어내고 앞치마를 두른다. ‘그리그, 페르귄트 조곡’을 토스트와 함께 굽는다. 과일을 씻어 자르고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 식사준비를 하고 나서 아이들을 깨운다.

달걀 프라이와 과일,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1번’이 식탁의 중앙에 놓인다. 내 자리엔 커피와 식빵이, 큰 애 자리엔 채소주스가, 작은 애 자리엔 밥과 국이 놓인다. 나는 아침을 뜯고 큰 애는 아침을 갈아 마시고 작은 애는 아침을 국에 말아 먹는다. 입은 오로지 먹는 일에 전념한다. 첼로의 낮은 선율에 따라 포크와 숟가락과 손가락이 식탁위에서 조용하게 움직인다.

식사가 끝나면 식구들은 ‘비제, 카르멘 서곡’처럼 급박하게 움직인다. 작은 애는 양치질을 하고 가방을 챙기고 교복을 입는다. 그사이 나는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고 바흐의 선율도 식탁에서 치운다. 설거지를 끝내고 차에 시동을 건다. 운동화 끈을 묶지도 못한 채 뛰어나오는 아이. 서둘러 학교로 향한다.

출근 시간과 등교시간이 맞물린 교차로, 각각의 목적지를 향해 자동차가 몰린다. 나는 학교로, 직장인은 일터로, 아이들은 학교로. 주황색 신호를 가까스로 지나고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60킬로미터 과속단속 카메라의 눈을 피하고 목적지를 향해 좌회전, 우회전, 차선을 바꾸며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그동안 아이는 알파벳을 짜 맞추며 전날 못 끝낸 영어 단어를 외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학교 앞이다. 수행평가 준비를 미처 끝내지 못했다고 울상인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겨우 출근길을 빠져나온다.

골목엔 리트리버를 산책 시키는 여자가 지나간다. ‘아서 프라이어, 휘파람부는 사람과 개’처럼 경쾌하게 걷는다. 네 개의 발과 두 개의 운동화 보폭이 리드미컬하다. 크림색의 커다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가는 개와 운동복차림의 주인은 목줄로 서로의 감정이 연결된 듯 기분이 좋아 보인다. 개는 산책을 하고 주인은 운동 중이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릴 듯하다. 하늘은 파랗고 태양의 동공이 머리로 내리꽂힌다. 하늘의 낯빛처럼 기분도 맑다.

집안으로 들어온다. 모두가 떠난 8시 반. 떠나는 것이 있으면 남는 것도 있다. 빈 집엔 나와 ‘말러, 심포니 5번 4악장’이 남는다. 거실엔 젖은 수건과 옷들이 여기저기 뒹군다. 아이 방은 책과 노트와 펜이 제멋대로 시위중이다. 남은 것들은 남은 대로 제 할일이 있듯이 제자리를 이탈한 것들을 있어야 할 곳에 가져다 놓는다. 제자리 찾기. 존재감이라는 것은 있을 때는 모른다. 늘 있던 자리에 없을 때 그것의 중요함을 깨닫는 법이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숨을 고른다. 식탁에 월요일이 덩그렇게 남는다. 한 주의 첫걸음. 일곱 개의 날 중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날. 막 낳은 따뜻한 달걀 같은 월요일.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요일이다. 직장인들이 일주일에서 솎아내고 싶은 요일도 월요일이 아닐까. 누군가는 지구의 종말이 월요일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누군가는 월요일의 목을 분질러 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월요일이 그 자리에 있어서 좋다. 월요일은 화요일을 떠받치고 화요일은 수요일을 떠받친다. 무언가 빠진 자리는 다른 무엇이 대체하고 누군가 떠난 자리는 다음 누군가의 몫으로 남는다. 이름만 다를 뿐. ‘마데츠키 행진곡’처럼 한 줄씩 열을 맞춰 행진하는 요일 중에서 맨 앞의 월요일이 없다면 그 다음날인 화요일이 월요일의 직무를 대행하게 되리라.

나는 월요일을 단단히 붙든다. 부엌창 너머, 월요일의 골목은 ‘히사이시 조, 바람이 지나가는 길’처럼 평온하다. 얼룩 고양이 한 마리, 어느 집 쪽문 밑으로 꼬리를 감춘다. 햇살이 반쯤 실눈을 뜨고서 자두나무 사이로 새들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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