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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기대하는 마음

 

“천지에 진짜 괴물이 있어요?”

오늘도 한 아이의 질문이 기어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광개토태왕릉비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거죠?”

“압록강에도 6·25전쟁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나요?”

“북한이 그렇게 가까워요?, 어쩌면 위화도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한 달이나 더 남은 ‘백두산, 압록강, 고구려유적지 역사탐방’을 두고 학생들은 틈만 나면 우르르 몰려들어 질문을 해댄다. 결국에는 “자, 자, 그냥 수업이나 하자”로 못내 아쉬워하며 마무리를 하고 마는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 그 ‘기대’라는 단어는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초등학교 때 소풍에 대한 기대로 잠을 설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학년 별로 갈라져서 떠나는 소풍의 장소는 늘 그랬듯이 대부분 멀지 않은 자연 속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닥친 소풍날의 광경은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고 마무리는 늘 허전하게 끝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도 그 기대는 항상 풍성했던 것 같다.

‘기대’라는 단어는 마치 농부의 ‘씨뿌리기’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농부가 씨를 뿌리며 그 씨앗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싹이 트고 자라갈 건지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매일 비 오기를 기다리거나 비가 오지 않을 경우에는 물이나 거름을 직접 주면서까지 간절히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싹이 트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싹이 트고 정성껏 키워보아도 성공적으로 키워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농부는 새로운 봄이 오면 또 다시 씨 뿌리기를 시도하게 된다. 그건 씨 뿌리기에 담겨 있는 희망 즉 그 기대 때문일 것이다. 농부는 그렇게 ‘기대’를 뿌리고 기다리는 행위를 끝없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대는 포기할 줄 모르는 한없는 생명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며칠 전 삭발을 하고 나타난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엄마, 아빠는 너를 낳을 때 그저 평범한 기대에서부터 시작 되었단다”로 쓰기 시작한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호기심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어린 나이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 하지만 부모님께서 자신에게 걸고 있는 진심어린 기대에 대해 숨김없이 말씀해 주셨기에 이제는 마음을 다잡게 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본인의 강한 의지와 결단을 보여주기 위해 머리도 깎고 선생님께 이런 고백적인 글을 쓰게 됐다고도 했다.

“어쩌면 저는 또 한 번 포기하고 노는 친구들과 어울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부모님께서 제게 걸고 있는 기대의 색깔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낼 거예요”라며 씽긋 웃어 보이는 그 아이가 너무나 대견해 보였다. 그것은 그 아이 스스로 자기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도 느껴졌다.

이렇듯 다양한 색깔로 우리의 삶 속에 깊숙하게 또는 온전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기대하는 마음’이 없다면 나 또한 오늘 하루를 과연 온전히 열어젖힐 수 있을까 싶다. 창문을 열고 아침 공기를 맞고 마침내 현관문을 열고 바깥세상으로 나서는 이 아침, 나는 내게 펼쳐질 오늘에 대한 기대가 마음 속 가득하다. 그 오늘이, 그 하루하루가 결국엔 내 삶을 밀고 나가는 힘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때로는 엉뚱한 기대, 때로는 간절한 기대, 때로는 평범한 기대로 가득한 매 시간을 걸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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