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사유와 통찰]정치인과 행정가의 언어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정치지도자를 주제로 제작된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킹스스피치 (King’s Speech)에 등장하는 국왕 조지 6세는 대중 앞에서 말을 더듬는 장애를 갖고 있었다. 국왕 취임 직후 아내의 소개로 평범한 언어치료사를 만나 훈련을 받기 시작한다. 그의 교육방식에 불만을 품기도 하지만 열심히 훈련을 거듭해 마침내 1939년 영국이 세계 제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에 선전포고하는 라디오 연설을 또렷하면서도 차분하게 해낸다. 영국 국민과 장병들은 왕의 감동적인 연설에 환호하며 전쟁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를 갖게 된다.

‘다키스트 아워 (Darkest Hour)’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한 처칠 수상에 대한 영화다. 처칠은 조지 6세와 동시대에 영국의 운명을 이끌어 간 정치인이다. 1940년 40만 명에 달하는 연합군은 독일군에 의해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포위된 상태였다. 사실상 연합군의 전부라고 할 만큼 대규모 병력이다. ‘처칠’이 작전의 설득을 위해 의회에서 한 세 번의 연설은 매우 유명하다. 열흘간의 작전으로 33만8천 명의 병사들이 탈출에 성공했고, 특히 어선과 구명정 등 860척의 영국 민간 선박들이 동원돼 병사들을 실어 나르며 탈출을 도왔다.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된 합동작전은 연합국 국민의 마음에 깊이 각인돼 연합군이 승기를 잡는 계기가 됐다.

처칠의 말이 곧 영국의 힘이 된 것이다. 처칠은 이 작전이 성공하리라는 신념과 성공전략을 갖추고 있었다. 의회 연설과 민간선박 동원이 그것을 대변한다. 덩케르크에 있는 오빠를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여비서를 작전 상황실로 데려가 작전 내용을 설명해 주는 장면에서는 자상함과 치밀함이 엿보인다. 영화 ‘덩케르크(Dunkirk)’는 이 작전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늘날까지 ‘덩케르크 정신’은 영국 국민이 단결해 역경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때 사용되는 상징적 언어가 됐다.

리더십은 리더의 언어, 가치관(도덕과 신념), 행동, 성과 네 요소로 평가된다. 이 중 추종자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언어이며, 평가 비중도 가장 높다. 언어는 나머지 요소를 담는 그릇이므로 사람들의 지도자에 대한 신뢰감은 그들의 언어에서부터 태동한다. 리더들이 말을 하고 양심과 행동으로 그 말의 생명과 진실을 입증할 때 당대와 후대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를 기억하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위의 두 사람을 포함해 링컨,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 존 F. 케네디, 간디, 프랭클린 루즈벨트, 오바마 등은 웅변력과 ‘진심의 힘’으로 세상을 움직인 위인들이다.

지금 국내 일부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의 입에서 막말과 빈발이 난무하고 있다. 정제돼 있지 않은 말속에 리더로서의 자질과 품격은 온데간데없다. 정치인은 유권자를, 표를 의식해 그렇다고 치자. 몇몇 고위 행정가의 험한 말은 한국 행정부 엘리트 수준의 저급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민망할 정도다. 한일 무역갈등을 놓고 대응전략과 ‘변화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는커녕, ‘죽창가’로 무력싸움을 부추기는 듯한 말을 하거나, ‘친일파’라는 말로 국민의 분열을 부추기며, 미국에 중재하면 ‘글로벌 호구’가 된다는 속어를 서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애국자인 듯하면서 실생활에서 여러 탈법혐의가 있다는 언론보도를 보면 공직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서글픈 마음이 든다. 공복은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겸손함과 품격있는 언어로 국민과 소통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의 저자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는 “권력의 힘은 국민이 그 힘의 정당성을 인정할 때 강력해 지며, 국민의 동기를 호소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은 진정한 가치와 도덕에 호소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정치가와 행정가가 새겨야 할 말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