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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달 가면(마흔여드레)

달 가면(마흔여드레)

/김혜순

너는 이제 얼굴을 다 벗었다

하얗고 둥근 달이 동쪽에서 뜬다

동서남북 천 개의 강물에 천 개의 가면이 뜬다

- 김혜순 ‘죽음의 자서전’ / 문학실험실·2016

 

 

 

 

 

시적 주체는 “아직 죽지 않아서 부끄럽지 않냐”는 목소리에, 일종의 견디기 힘든 수치심에 휩싸인 존재이다. 질문을 듣는 귀는 실제의 귀가 아니라, 자기윤리를 탄생시키는 마음의 귀다. 쉬임없이 들려오는 저 목소리. 저잣거리의 질책은 어떤 명령을 담고 있다. 어떤 의지의 무게로 시적 주체를 덮쳐오고 있다. 주체는 균열되고 분열된다. 고통과 고독으로 전염된다. 마흔여드렛 날에 이르러서 ‘너는 이제 얼굴을 다 벗었다’. 여기에서 “너는 네가 아니고 내가 바로 너”로 나타난다. 너는 “유린의 역사를 지탱해온”, “억울한 죽음이 수많은 나라”에서 개별적인 죽음을 겪는 존재이다. 문득 너는 “존재에서 존재자”로 출몰하였다. 너를 탄생시킨 현실은, 죽고 사는 일이 자연스럽지 못하는 곳이고, 죽임이 떠도는 장소이므로, 새로운 윤리적 실천이 요구되고 있는 곳이다. 주체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몰락과 부활을 거듭한다. 시나브로 문득 타자로 호명된다. 나(너)는 새롭게 창조된 혼종의 주체가 된다. “내 거울 속에 든 타자”처럼, “타자의 거울 속에 든 주체”처럼. 온전히 죽음(死)으로 편재될 수 없는 삶(生)이 되었다. 삶으로 돌아올 수 없는 죽음(死)이 되었다. 그리하여 ‘동서남북 천개의 강물에 천 개의 가면이’ 뜨는 현상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천 개의 가면. 여기의 변신(가면)은 목적이 아니다. 문득 나와 나(너)를 잇는 과정이고, 하나의 실천이다./박소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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