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문화칼럼]노래는 사회상의 반영이다
[안태근문화칼럼]노래는 사회상의 반영이다
  • 경기신문
  • 승인 2020.01.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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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회장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노래만큼이나 우리 삶과 밀접한 장르도 없다. 노래는 심오한 인생의 철학을 음유하기도 하지만 당대 생활상을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노래 가사를 읽고 노래를 듣는 것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장르이다.

그동안 쭉 노랫말과 곡을 들어본 바 한국 노래는 굴곡진 우리에 근현대사를 읽는 필수 요소이다. 한국가요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다. 일본 엔카의 영향에 대한 반론이 고 박춘석 작곡가에 의해 제기되었고 지금도 그 유래와 영향에 대한 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1960년대에는 서양 팝송의 영향으로 음악의 흐름이 곁가지로 퍼져나갔고 그것은 청년문화를 태동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과 상관없이 한국가요는 한국인의 심성과 아픔, 즐거움을 노래하며 대중의 환호를 받아왔다. 노래란 가수 이외에도 작곡가, 작사가의 몫이 크다. 한국가요는 가수들이 잘 부를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광복 후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휴전 후의 유행가를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노래를 들어보면 온통 한과 눈물의 노래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격동의 세월이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 어르신들은 1945년 광복을 맞고는 행복의 시작인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분단으로 이어졌고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50년의 한국전쟁은 한국 역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미증유의 대혼란이었다. 그것은 배고픔과 가난보다 무서운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고 헤어지는 생이별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많은 가족들이 분단이 고착화되며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즉 이산가족이다. 너무 오래되어 이미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혈육들이 북에 계실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우리 할머니도 남편 따라 타향인 서울엘 오셨는데 친정 가족은 모두 북에 계셨고 다시는 만나질 못했으니 그 이산의 아픔이야 오죽하셨을까?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당시 여인네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반추해보면 절로 눈물 나는 사연들이다.

가요는 사회상의 반영이다. 당시 이러한 아픔들이 노래로 만들어져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전국노래자랑’의 명사회자인 송해 선생이 부르는 이산과 전쟁의 아픔을 소재로 한 노래들이 그래서 더욱 와 닿는 것이다.

광복 전인 1940년 ‘나그네 설움’부터 1941년 ‘대지의 항구’, 1948년 ‘울고 넘는 박달재’, 1952년 ‘꿈에 본 내 고향’, ‘전선야곡’, ‘아내의 노래’, 1955년 ‘이별의 부산정거장’, 1956년 ‘단장의 미아리고개’, 1957년 ‘한 많은 대동강’, 1958년 ‘삼팔선의 봄’, 1959년에 나온 ‘유정천리’, ‘대전부르스’ ….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래들이 당시의 현실과 이산가족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남북이 나뉘어져 전쟁을 하고 그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짓눌린 것은 우리의 가족들이고 이웃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웃을 일이 없던 때이다.

일제강점기를 사시고 한국전쟁을 겪으시며 갖은 고생을 하시다가 우리의 어르신들은 돌아가셨다. 꼭 북만주벌을 누비며 일본군과 싸우고 한국전쟁에서 전사해야 눈물 나는 비극은 아니다. 당대의 아픔은 모두가 똑 같이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노래를 듣고 함께 노래의 의미를 알고 우리의 정서를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국인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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