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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영화 ‘축제’와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병문안을 마치고 들어온 길에 울창한 숲과 나무를 만났다. 죽음, 그것은 생명이 있는 모든 유기체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살았던 집이 아닌 낯선 공간인 병원 장례식장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와는 달리, 전통적인 한국인의 장례식은 죽은 자와 산 자를 하나로 만들고, 죽은 자를 위해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축제의 장이었다. 이청준 소설이 원작인 영화 <축제>에는 그러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축제>는 한국인의 죽음을 비교적 훌륭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로서 활약하던 준섭은 전화를 통해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축제>에 나타난 죽음의 의례에는 죽음에 대한 슬픔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들을 엿볼 수 있다. 초혼을 하는 것과 사자상을 차린 것, 의례에 참석한 사람들이 소리를 하는 것 등은 죽음이 슬픈 것,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이는 시신에게 염을 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염을 할 때 망자의 가족은 시신과 마주한다. 이는 죽음의 이미지를 피하려고 하는 현대적 죽음과는 매우 다른 태도다.

사회학자 아리에스에 의하면 전통사회에서의 죽음은 ‘순치된 죽음’이다. 다산다사의 사회에서의 죽음은 모든 생명체에게 찾아오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순치된 죽음’에서는 죽어가는 자는 자신에게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수용한다. 자신의 침실에 가족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일생을 서사의 형태로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죽음은, 유언장·묘비명을 남긴 자아의 죽음이 생긴 죽음, 죄를 회개하고 죽으려는 죽음, 삶의 허무함을 느끼면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게 해서 바뀌게 된 현대의 죽음은 ‘금지된 죽음’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죽음은 우리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 되었고, 심지어 무서운 것이 되었다. 죽은 사람에게서 죽음을 느끼지 않으려고 해서, 죽음을 맞는 사람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대부’에도 그러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대부’에서는 적에게 피살당한 대부가 죽자, 그의 가족들이 대부의 얼굴을 곱게 화장하고, 깨끗이 씻긴 뒤 멋진 양복을 입혀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이 나온다. 죽은 대부에게서는 죽은 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장면은 죽음의 이미지를 기피하는 현대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축제>의 중심인물들은 죽은 자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사랑하며, 죽음 이후의 세계도 생각한다. ‘축제’에서 죽음의 의례는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즉 저승에도 삶이 있다고 믿고 죽음의 슬픔을 부정한다.

<축제>에서는 준섭이 자신이 쓴 동화를 딸아이에게 얘기하는 장면이 중간중간 나오는데, 동화의 내용은 노인이 점점 늙으면 아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는 죽음에 임박하는 노인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노인이 죽음과 가까워지면서 삶에서 멀어지는 존재가 아닌 점점 아이가 되어간다는 동화의 표현은, 사람들이 노인을 친숙한 존재로 느끼도록 한다.

그렇다면 오늘 날 우리의 죽음은 과연 영화<축제>에서의 죽음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리에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점점 금지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죽음의 슬픔을 잊어버리고 축제라도 벌이듯 모두 모여서 소리 내어 떠들고 술 마시고 화투치고 하는 우리의 전통은, 이제는 낯선 것이다.

필자도 아버님과 이별을 준비하면서 오래전 떠나신 어머님이 그리워진다. 아버님과 이별만큼은 아프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세월은 지나갔어도 여전히 준비없는 이별을 한다. 고향땅 해남에서 큰 산을 이루고 가파른 생을 걸었던 일들은 눈물이 되어 살아온 해월리 바다도 이제는 시금석이 되었다. 아버지를 보내야 할 때, 임권택 감독의 영화 1996년〈축제〉소설을 꺼내는 추억이 낯설다. 잃어버렸던 옛 추억과 기억을 아름답게 맞이하고 싶은 서글픈 마음들일까? 삶과 죽음이 언제나 길 위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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