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기주봉에게 연출자는 “이놈아, 욕하고 물 찌끄라니까(퍼부는다는 뜻) 그게 뭐냐. 웃음 터지면 코미디지 모독이냐?” 차마 입에 못 담을 욕설 더해 조진다. 여배우 조주미에게는 “연극 좋아하네. 꺼져!”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제목이 좀 있어 보였나, 신촌 76소극장 첫 공연에 표가 좀 팔렸다. 송승환 등과 소극장운동을 하던 연출가 기국서의 ‘관객모독’은 그의 의외의 똘기 폭발까지 더해 화제가 됐다. 그래도 돈벌이는 안됐다. 1978년 11월의 일. 관객이 느그들 구경하는 거 아니여, 배우가 저 사람들 바라보고 욕설 퍼부어 무참하게 하는 거야. 모르겠어? 저 사람들이 세상 뒤집어 보도록 판단의 새 계기와 경험을 주는 게 이 연극이여. 모독당하겠다고 돈 낸 놈이 웃으면 니는 사기여, 저런 도둑놈... 또래여서 가끔 들렀다. 몇몇은 통행금지 사이렌 불면 부근 내 하숙집으로 술병 품고 몰려오기도 했다. 안주는 내가 샀다. 아마 반체제(反體制)로 찍혔을 불평분자들이었다. 그게 세상에서 연극이 해야 할 역할이었다.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 ‘관객모독’(1966년 作)이라는 이 희곡으로 ‘저런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다. 2019년 ‘그 유명한’ 노벨문학상을 받으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 옳지 못한 짓 하고 엉뚱한 수작으로 남을 속이려 한다는 속담이다. 매끈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 능숙한 말솜씨의 ‘AI윤석열’은 느닷없는 오리발처럼 낯설고 당혹스럽다. AI은 인공지능이다. 신기술 AI가 매만진 저 윤석열은 윤 후보가 아니다. 이준석 대표의 젊은 비단주머니가 너무 나갔나, 저건 사기(詐欺)다. 날조(捏造)다. 신기술 따위 제목 이전에 상식으로 보라. 젊은 여자들을 암소로 ‘출연시킨’, 더러운 서울우유 광고처럼 국민 속이는 짓이다. 그 ‘암소여자 광고’처럼 사과하고 바로 거두어들이는 것이 어떤가. 바카야로(馬鹿野郎 마록야랑)는 ‘바보야’하는 일본의 욕이다. 원래는 중국산(産)이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는 요즘 말로 가짜뉴스(fake news)로 풀 수 있다. 사슴을 가리켜(指) 말이라 한다(爲)는 뜻이다. 사전은 ‘사실이 아닌 것을 강압으로 사실로 인정하게 함’이라고 푼 다음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이라고 덧붙였다. 나쁜 짓일세. 진시황 죽은 후 권력을 좌지우지한 내시 조고(趙高)가, 계략을 써서 만든 어린 황제 호해(胡亥)와 신하들에게 사슴을 보이며 말이라 했다. “왜 저게 말이냐?”한 신
“한자를 쓰려면 확인을 해야지...” 지적하니 그는 의아한 표정이다. 저널리즘 글쓰기 강의에 제출한 리포트, ‘...여론(與論)을 무시하면 안 된다.’라고 쓴 것을 ‘輿論’으로 고쳐야 한다고 얘기해주니 그 학생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한참 보더니 “아, 글자가 좀 다르군요.” 한다. “그래도 발음은 같으니 그냥 쓰면 안 되나요?” 반문한다. 알아들으면 되지 않느냐는 항변인 셈이다. 여론 ‘여’의 한자는 수레 輿다. 차(車) 즉 바퀴 여럿인 수레를 여러 사람이 움직인다고 하여 ‘여럿’ ‘다수’의 뜻이 됐다고 푼다. 여럿이서 뭔가를 들어 올리는 그림글자 舁(여) 안에 車가 들어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여론이다. 조선시대 김정호의 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輿이기도 하다. 수레(輿)처럼 만물을 실은 땅(地)이 여지(輿地)다. 이 말은 대지(大地)나 천지(天地)의 은유적 표현이다. 모양 비슷해도 ‘그냥 쓰면’ 안 되는 이유다. 그 리포트의 與자는 ‘주다, 패거리, 따르다, 편들다’ 등의 뜻이다. 이 與論은 사전에 없다. 굳이 해석하자면 ‘(누구를) 편들거나 따르는 의견’이다. 여건(與件)이 ‘주어진 조건’ 임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까? 조작 여론인 것이다.
‘개고기 식용’ 관련 논란을 생각한다. 얼핏 떠오르는 것이 구라파와 미국, 특히 불란서에서 고급요리로 치는 푸아그라(foie gras)다. 유럽과 유에스에이(U.S.A. 아메리카), 프랑스를 동아시아 방식으로 부른 것은 ‘문화의 차이’를 보이고자 함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의 동아시아의 용(龍)과 동굴 속 공주를 구하는 기사(騎士)의 창에 찔려 피 흘리는 서구(西歐)의 드래곤(dragon)은 전혀 다른 상상의 동물이다. 상당수가 龍의 번역어가 ‘드래곤’이라고 착각하는 마당이다. 개고기 문제의 (문화적) 발생 지점으로 읽는다. 나는 푸아그라를 즐기는 저 사람들을, 속으로는 못마땅하지만, 비난하지 않는다. 현지에서 먹어봤다. 맛있었다. 그 후 먹지 않았다. 그 뜻은 ‘기름진 간’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유서 깊은 요리다. 한국의 일부 식품점, 서양요리점에서 만날 수도 있다. 인간이 제 입맛을 위해 다른 생명을 학대할 수 있는가? 깔때기를 거위 오리의 목에 넣고 옥수수 같은 곡물을 밀어 넣는다. 간이 0.5~1Kg까지 커지고(붓고) 맛이 좋아진단다. 세계 곳곳에는 공감 못할 음식이 있다. 나는 ‘그것을 먹지 말라.’ 윽박지르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왕년의
절집 벽의 심우도(尋牛圖)는 소를 찾는 그림, 불교의 오래된 상징 중 하나다. 상징은 말과 글의 세계, 나아가 문명의 씨앗이다. 소는 ‘인간의 마음’이라고 읽자. 우리 불교와 사상, 정서적 전통에서도 이미지 크다. 만해(卍海)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은 ‘소를 찾는 집’이다. 뜻 크고 깊은 스님 만해, 아름다운 시 언어로 인류를 가르쳤다. 엄혹한 일제 치하에서 3·1 독립선언에 나섰고, 끝내 그 연꽃 마음 변절하지 않았다. 그의 종교의 친정은 인제 백담사다. 만해기념관 부근 계곡은 단풍이 극치여서 찾는 이 더 많았다. 매서우면서도 그윽한 이율배반적인 눈길, 만해 조각상에 마음 숙였다. 저런 스승 있으매 오늘 우리가 이리 당당하리라. 마침 이재명 이낙연 두 후보의 재회(再會) 배경 벽면에 우연히 걸린 찾을 尋(심)자 액자에 주목하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우연일까, 허나 중요한 만남의 상징으로 여겨 그 시사(示唆)하는 바를 찾는 것이겠다. 한자가 그림임을 잘 보여주는 글자다. 손 모양 계(彐) 아래 만들 공(工)과 입 구(口)다. 다시 쓰면 左(좌)와 右(우)다. 아래는 손목에 점찍은 마디 촌(寸)이다. 암중모색(暗中摸索), 어둠 속 안개바다를 좌우로 손 내밀어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