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행중에 데크에서 넘어진 여행객을 119구급대원이 응급조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게 된다. 얼핏 보기에 무릎에 찰과상으로 피가 흐르고 오른손은 골절인듯 부목을 대는 응급조치를 받았다. 강 건너편에 119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서 다시 차로 갈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분의 사고상황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자갈길과 데크로 구성된 평지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발끝이 자갈에 미끄러졌거나 데크에 등산화가 걸려 넘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안전사고는 순간에 발생하지만 그 결과는 골절부상과 찰과상을 입게 되고 이후 2~3주간의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은 물론 직장에도 휴가를 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안전만을 강조하는 것이 정답은 아닌듯 여겨진다. 어려서 시골아이들은 나무를 깎고 풀을 베고 화롯불에 밥을 볶아 먹었다. 초등생끼리 숯불에 계란을 삶아먹고 소죽을 끓였다. 닭과 오리를 잡아 삶아먹은 초등 5~6학년생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연필을 깍는것조차 기계에 의존한다. 초등생이 칼을 쓰는 작업은 안전을 이유로 금지사항이다. 연필을 깎는 작업은 손의 미세한 움직임과 위험한 칼날을
어려서 3권짜리 삼국지를 읽었다. 표지가 떨어져나간 이 책을 동네 청년들이 돌려가며 보았다. ‘새농민’이라고 월간지가 우체부 아저씨의 붉은 가죽가방에 담겨 배달되었다. 아마도 당시 농어촌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해 만든 잡지였을 것이다. 거기서 고바우 영감을 처음 만났다. 이마에 머리카락 한 올 세우고 세상을 비평하는 4칸짜리 만화였다. 세월이 흘러 책이 줄어들고 모바일이 늘었다. 전기만 통하는 철선인줄 알았는데 전기줄 속으로 말이 오간다. 시골마을 이장집에 전화기가 들어오자 동네사람들이 줄을 선다. 도시에 나간 아들딸에게 소식을 전하고 그 자녀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줄을 서니 이장님 집 앞은 줄서는 맛집(!)이 되었다. 이장님댁 전화를 쓰기위해서는 10원짜리 동전이 필요했다. 시외전화 전용전화기로 시내전화가 되는 줄을 누군가가 알아냈다. "유레카~!" 대단한 발견이었다. 시외전화 되는 기기이니 시내는 당연히 되는데 시외만 거는 줄 알았을 정도로 착하게 몰랐다. 모바일은 무선으로 연결된다. 이제 4살 아이도 그림책을 문지르다 화면이 바뀌지 않으니 책을 내던진다. 매일 오전, 오후로 예쁜 사진을 주고 받는다. 참 좋은 글을 어디서 구했는지 긴 문장을 정성
다시금 전문가들의 글을 자세히 꼼꼼히 읽어보게 된다. 기회를 얻어서 이처럼 글을 올리는 입장이 되고보니 다른 분들의 글에 관심이 가고 신문 사설도 읽어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같이 짧은 문장속에 옥수수알처럼 빼곡하게 담아내는 꼭 필요한 단어의 조합과 융합에 감탄한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듯 꼭 필요한 자리에 한자, 사자성어, 숙어를 재료삼아 사우디 부호들의 카펫 엮어가듯 사각과 네모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도대체 한글과 한자를 가지고 만들고 짜낼 수 있는 모자이크는 얼마나 많고 그 바닥은 얼마큼 넓은 것일까. 우선 짧은 2글자 제목이 마음에 든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 글자 제목에서 반이상 설명한다. 시의적절이다. 제목을 보는 순간 필자의 생각 절반이 마음에 들어온다. 그리고 눈으로 문장을 살피면서 공감을 하게 된다. 현악기의 화음처럼 제목과 내용이 잘 맞아 돌아간다. 그리고 기승전결. 그렇게도 깔끔한 문장의 이어감이 마지막에서 한 잔의 사이다처럼 청량하다.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구나. 감탄과 탄복을 하게 된다. 그런 글을 쓰시는 분이 즐비한 세상이다. 볼수록 존경심만 가득하게 하는 분들이다. 펜으로 키보드로 오케스트라 80명을 지휘하는 모습이 연상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말이다. 뽕나무는 논밭도 아니고 산도 아닌 애매한 산기슭에서도 잘 큰다. 집에서 가까우면 농약이나 담배 냄새가 배어서 누에가 먹지 않을 것이고, 아주 멀면 아낙과 딸들이 뽕잎을 따러 가고 오는데 힘들것이니 상전의 거리 또한 적정해야 했다. 그 뽕밭이 바다가 되려면 아주 큰 비가 오거나 땅속이 요동을 쳐서 내려앉아야 가능한 일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알이 깨진다. 바위는 끄떡없이 그 자리를 지킨다. 되지 않을 일에 무모하게 도전함을 말한다. 하지만 수 백년 한자리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한옥에 부연을 달고 기와를 올리면 당년에 추녀끝에 빗방울 자리가 생겨난다. 모두가 눈을 들어 지붕의 석가래를 셀 때에 나 홀로 고개숙여 빗물자리를 발로 밟아가며 정확하게 세었다. 이 규수는 왕비가 되었단다. 창의적 발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다음 아름다운 꽃을 쓰라는 시험지의 답안에 벼꽃과 목화꽃이라 적은 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 벼꽃은 곡식이고 목화는 옷이다. 연목구어(緣木求魚)란 나무에서 고기를 찾는다는 것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거나 되지 않을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역
같아서 좋은 것이 있고 비슷해서 싫은 것이 있다. 같은 옷을 입은 친구를 만나면 유니폼 같아서 기분이 좋은 경우가 있고 교복 같아서 싫은 상황도 있다. 모처럼 옷 한 벌 마련했는데 백화점 현관에서 같거나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덜컥 화가 날 수 있다. 왜 저 사람이 거기에서 나와! 옷가게에서 방금 구매한 디자인, 색상, 분위기가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난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갑자기 새 옷이 싫어지고 “택도 떼지 않고” 면허증처럼 장롱에 들어가 긴 세월을 기다리거나 새로운 입양자를 만나야하는 처지가 된다. 옷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멋을 창출하기는 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는 자신이 느끼는 만큼의 가치나 멋스러움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부부 단체여행을 가보면 옷의 중요성이 커진다. 첫날에는 평범하고 검소한 옷차림이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과감해지고 공격적인 옷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여행일정 후반부에 가면 부인들은 마치 인생의 마지막 여행인 양 화려한 옷으로 경합을 벌인다. 같은 옷을 연이어 입는 것은 단체여행에서 금해야 하는 에티켓인가 싶다. 여행 가방은 빵빵하고 아침 출발시간은 지연된다. 아침까지 입고나갈 옷을 결정하는 고심
사람이 일흔살까지 산다는 것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 해서 칠십세 생신 잔치를 고희연(古稀宴)이라한다. 당나라의 시성 두보(杜甫)의 곡강시에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人生七十古來稀)’라는 구절이 나온다. 어려서 본 기억으로 61세 회갑을 맞으신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흰 머리카락에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많았다. 회갑 잔치상을 받은 분들은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로 느꼈다. 하지만 요즘에는 69세에도 할머니라 하면 싫어하신다. 사모님, 여사님으로 호칭되기를 원하신다. 아마도 1990년대까지 회갑잔치가 있었고 10년을 기다려서 칠순잔치를 여는 분도 많았다. 회갑잔치에는 부조금을 가져갔다. 그런데 칠십 고희를 맞은 잔치에서는 봉투를 받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 결혼해서 살아오는 동안 신세를 진 분들에게 70세 장수를 하였으니 감사의 잔치를 베푼다는 해석을 들었다. 하지만 요즘의 신세대 어르신들은 회갑을 부부여행으로, 칠순은 집안잔치로 치룬다. 그래서 칠순잔치에서 신명나게 노래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팔순잔치를 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르신의 나이를 표현하는 한자가 재미있다. 산수(傘壽)는 80세다. 傘자를 八과 十, 파자(破字)로 해석한 것
승진하면 대부분 부서를 이동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고 승진은 아니지만 발전적인 자리바꿈도 당사자에게는 큰 기쁨이기에 동료들이 새로온 직원을 포함하는 송·환영회를 연다. 식사하기 전에 기념품 전달을 하기도 하는데 꽃다발을 주고 Y-셔츠, 벨트, 지갑, 상품권을 전달한다. 현직에 있을 때, 부서직원이 부서를 떠나면 복사지 6장을 연결해 붙인 장문의 소개글을 지루할 정도로 읽었고, 그 두루마리가 나중에는 술잔을 올리는 쟁반이 되기도 했다. 송별회는 함께 근무한 정을 담아 그간의 노고를 자화자찬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부서에 가게되는 기대감을 마음껏 발산하는 모임이기도 했다. 아마도 기념품은 막내 후배가 챙겨서 다음날 새로운 부서로 이동할 때 이른바 후행 단원들이 함께 들고 가서 다시한번 전했던 기억도 있다. 이처럼 부서를 이동하는 이에게 함께한 마음을 담아주는 기념품에 대한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물론 1급 공무원 상사이니 이런저런 고민을 한 바 있다. 그래도 도에서 근무하다가 중앙으로 영전하는 분이니 의미있는 기념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함께 매주 간부회의를 열고 도정을 함께 고민하고 검토했던 국장들의 주머니돈을 모아서 기념품을
편지 내용을 소개한다. “인간이 자연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공무원의 심정으로 돌아가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나 반성하기도 하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비록 재산을 잃고 몸과 마음의 고생이 컸지만 인명피해를 최소화 한 것에 보람을 느끼고, 그때는 모르고 뛰어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동료직원까지 위험에 빠트릴 뻔한 일도 떠오릅니다. 가슴 뜨거운 일도 생각납니다. 군부대 장병들의 뜨거운 조국애, 수백리길을 달려와 집안 청소를 돕고 따뜻한 국물로 용기를 주고, 격려의 말씀을 보내주신 주변의 많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 끝이 없겠습니다." 동두천시 생연4동장으로 근무하다 부서를 이동한 1998년 11월 30일에 통장님, 자문위원님 등 어르신 150여분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한 통장님께서 원본을 기증해주셨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이 있었다. 봉투를 얻어 곱게 간직하여 가져왔다. 그리고 밤 늦게까지 편지 필사 워딩을 하고 통장님께 감사편지를 적었다. ‘감사패. 위 어르신은 1998년 동장의 이임 감사편지를 23년간 보관하시고 역사자료를 기증해 주셨기에 감사패를 드립니다.’ 공직 중 써온 도장 5개를 모두 찍었다.
고교동창 친구의 외동딸 결혼식에 가서 행복하고 아름답게 진행되는 혼례를 보면서 느낀 바를 정리해 보았다. 원고를 친구에게 보냈는데 그의 아내가 신문에 난 글을 보고 싶단다. 인터넷에 이어 지면에 실렸다. 신문을 스크랩하여 스캔을 뜬 후 우선 급한 마음에 SNS로 보냈다. 평소 소통이 빠른 친구이기도 한데 이번 답은 더 빨리 왔다. 고려대학교 회관에서 열린 혼례에서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고, 신랑 아버지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한다. 안경을 벗고 멀리 보이는 글을 읽다가 눈물이 망막을 가려서 더듬거린다. 신부 어머니가 새 출발 부부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실질적인 주례사다. 아마도 집에서 딸과 남편을 앉혀놓고 몇 번 읽어보는 연습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숨소리가 마이크 깊이 빨려 들어간다. 긴장하면 호흡이 겹치고 강한 콧바람이 조절되지 않는다. 보기에는 차분해 보이지만 마음속 애간장의 심정이었을 오늘부터 친정어머니가 된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한복 치마를 잡고 무대를 내려와 남편의 손에 의지하여 자리를 찾아 앉는다. 아기를 돌보던 친구가 신랑에게 신부를 소개한다. 신랑의 축가에서도 첫음이 잡히지 않는다. 프로가수도 무대 동선을 연습하고 목을 푸는데 새벽부터 긴장
신문과 방송을 보면서 참으로 타이밍 맞게 기사를 쓴다고 감탄하는 일이 많았다. 이를 위해 애쓰시는 취재기자, 논설위원, 주필 어르신의 노고를 생각했다. 그리고 저녁 늦게 발생한 사건사고의 내용을 TV뉴스 밤 9시에 나온 것까지 다음날 새벽 신문기사로 올리는 열정을 보면서 취재기자와 편집기자, 출판부 직원들은 도대체 몇 시까지 일하는가 상상해 보았다. 그래서 나름 시의적절한 글을 쓰려고 생각을 골똘히 하곤 하는데 어쩌다가 시기에 맞는 글을 급하게 쓰면 오타를 내고 만다. 오타는 회식에서 말하면 고기를 태운 것이다. 편집과정에서 바로잡아 주시는 관계자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몇 번은 인터넷판에 오르기 전에 수정하였지만 이 또한 바쁜 편집작업을 하는 분들에게는 크게 송구한 일이다. 정신을 차리고 두 번, 세 번 자체교정을 보아야 하고 내용을 살펴야 하겠다. 글 내용이 중요하다지만 오탈자가 발생하면 독자에 대한 결례가 된다. 공직에 근무할 때 국장님 중에 보고서나 결재서류에서 오탈자가 나올 때까지 서류를 넘기는 분이 있었다. 열심히 지문을 문지르며 보고서를 읽으시다가 틀린 글자가 나오면 모래속에서 사금(砂金)을 발견하신 듯 환한 표정으로 직원의 얼굴을 바라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