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절기로는 분명 봄이지만 봄 같지 않은 추운 날씨가 이어질 때 쓰는 말이다. 좋은 시절이 왔어도 상황이나 마음이 아직 여의치 못하다는 은유적인 의미로 더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의 유래는 당나라의 시인 동방규가 쓴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중국 고대의 4대 미인이라고 하면 서시와 왕소군, 초선, 양귀비를 꼽는다. 미모도 미모려니와 그녀들의 삶이 중국 역사를 대변할 만큼 파란만장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회자 되었다. 동방규가 전한시대의 미인 왕소군을 소재로 지은 시가 이렇다.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옷에 맨 허리끈이 저절로 느슨해지니 /가느다란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라네” - 동방규, 〈소군의 원망〉 그래서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이 아니라는 말은 단순히 외롭고 힘든 마음의 표현을 넘어 자신의 현재 처지나 환경에 대한 비관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요즘 ‘코로나19’ 급속한 확산으로 온 국민은 걱정과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유행성 질환으로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며,
설 명절이 지나고도 겨울 같지 않더니 갑자기 입춘 추위가 몰아닥쳤다. 지금 온 나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산으로 어수선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데는 되도록 가지 않는 게 예방일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지금은 모든 사람이 건강에 대해 민감해진 때이기도 하다. 엊그제 필자는 무엇에 체했는지 저녁부터 속이 울렁거리고 답답해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이튿날에 그냥 약국에 가서 소화제를 사서 먹고 괜찮으려니 했다. 그러나 그날 밤엔 몸살인지 두통과 함께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다음 날엔 아예 앓아눕고 말아 병원에 갈 기운도 없었다. 또 다음 날은 단체 모임에 중요한 회의와 강의가 있어 일어나야 했다. 억지로 일어나 회의에 나갔다. 보자마자 몇몇 지인은 얼굴이 왜 그렇게 상했냐고 걱정을 해 주었다. 당장 병원에 가라고 했으나 다행히 흰죽을 조금씩 먹으며 몸이 괜찮아졌다. 후에도 병원에 갔나 걱정해주는, 언니 같은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그토록 고마울 수가 없다. 평소에 건강하니 별로 내 몸에 신경을 안 쓰고 살아왔다. 더구나 병원에 가는 일은 웬만해선 잘 가지 않는다. 여태까지는 건강에 너무 자만심으로 살아온 것 같다. 요즘은 아침에 눈 뜨면 밝아오는 아침을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새해를 맞으며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아 후회를 하게 된다. 지내고 나면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 일들이 많다. 모든 일에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작품도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부모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주 전화도 드리고 찾아뵈어야 하는 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시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친정어머니만 계신다. 나이가 이렇게 먹도록 어머니는 늘 어릴 때 그 어머니로 계신다. 어머니 눈에도 이 딸이 나이를 먹었어도 어린아이로 보듯 다를 바 없다. 영국문화협회가 세계 102개국, 4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가 ‘어머니’였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는? Mother(어머니), 그럼 두 번째 아름다운 영어단어는? Father(아버지)였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두 번째는 Passion(정열), 세 번째는 Smile(미소), 네 번째는 Love(사랑)였다고 합니다. 미안하지만 열 번째도 Father는 없었고, 일흔 번째도 Father는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웃음을 남겨
‘농가월령가’ 10월령을 보면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독 옆에 중두리(작고 배부른 오지그릇) 요 바탱이(중두리보다 조금 작은 오지그릇) 항아리라/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장다리 무 아람 한 말 수월찮게 간수하소.’‘농가월령가’는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1786~1855)가 지은 것이다. 우리의 전통 음식인 김장하는 모습을 그대로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김장에 대한 인식이 김장하는 사람보다 김치를 사 먹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김포족’은 김장을 포기한 주부를 일컫는 요즘의 신조어다. “지금 세상에 돈과 시간 낭비하며 힘든 김장을 꼭 해야 하나요?”하고 반문하는 주부들이 전에 없이 많이 늘었다. 올해 세 차례나 들이닥친 가을 태풍의 영향으로 크게 치솟은 배춧값 상승도 김장을 포기하는 요인이 되었다. 국내 유수의 한 식품업체가 주부 3115명을 대상으로 한 ‘김장’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9%가 ‘김장을 포기한다’는 ‘김포족’으로 나타났다. 그 ‘김포족’의 김장 포기 이유로,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로 인한 후유
우리는 살아가면서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가 가끔 있다. 지금 현재가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나, 불행이나 행복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해서 모르고 살아갈 때, 이럴 때 우리는 행복을 생각한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라는 책은 실제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프랑수아 를로르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실화 소설이다. 파리 중심가 한복판에서 꾸뻬 씨는 잘 나가는 정신과 의사다. 꾸뻬 씨의 진료실이 있는 도시 사람들은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점점 꾸뻬 씨를 찾는 환자들은 많아졌지만 정작 꾸뻬 씨 자신은 행복하지가 않았다. 정말 행복하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일까?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에 진료실 문을 닫고 진정한 행복의 비밀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하여 행복과 삶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꾸뻬 씨가 행복 여행에서 배운 23가지 중 마음에 와닿는 몇 가지 내용을 적어본다. ‘행복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어느새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느끼게 된다. 시월도 중순이 넘어 가을이 깊어간다. 지금은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결혼식을 하지만, 그래도 주로 봄가을에 결혼을 많이 한다. 지금이 한창 결혼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은 결혼하는 나이도 점점 늦어지는 추세이다. 그나마 1인 가구가 많아지는 시대에 결혼의 의미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식을 둔 부모는 결혼을 시킬 때 한 번쯤 눈물을 글썽이게 된다. 언젠가 지인의 자녀가 결혼을 하게 되어 결혼식장에 간 적이 있다. 그 혼사는 아들을 결혼시키는 자리였다. 그런데 혼주인 아버지가 계속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는데 끝날 때까지 아버지는 많이 울어서 눈자위가 붉어졌다. 하객들이 모두 의아심에 궁금증을 느꼈다. 혼주인 어머니 말인즉 원래 아버지가 감성적이고 눈물이 많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아도 그렇게 잘 운다고 하였다. 내가 결혼을 할 때는 스물셋의 나이였지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때도 가을인 시월의 마지막 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가려고 부모님과 인사를 하는데, 어머니의 눈이 붉게
어느 때 우리가 살아가면서 ‘영감의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창작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는 그런 순간을 ‘接神의 순간’이라고도 한다. 무속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接神이란 몸에 신령이 지피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소설 속에서 주인공과 작가가 동심 일체가 되는 순간이겠는데, 소설가들은 그냥 ‘접신의 순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소설가가 조선 시대에 살던 기생에 대해 소설을 쓴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순간에 그냥 주인공과 작가가 ‘붙는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글 쓰는 손가락에서 그 기생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막 아양 떠는 소리가 나오고, 작업실에서 글을 쓸 땐 진짜 소리까지 내면서 쓴다고 한다. 그럴 땐 작가의 뇌가 여자로 세뇌된 것이다.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쓸 땐 진짜 그렇게 나온다고 한다. 우스개로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접신이 됐다가도 잘못하면 떨어지는 수가 있다고 한다. “황진이를 쓰면서 굉장히 낭패였던 적이 있습니다. 한 1년쯤 고생해서 딱 붙었어요. 이제 손가락에서 여자 목소리로 막 나오게 됐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집에 갔어요
날마다 푸른 산 능선의 이마를 마주한다. 바라산과 백운산이 멀리 보인다. 왼쪽엔 모락산이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엔 겨울날 흰 눈 쌓인 저 앞산을 생각한다. 지난겨울 아침 창밖은 간밤에 내려 쌓인 설산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가까이서 설봉을 바라보는 일도 참 신비롭고 기쁜 일이다. 요즘 새벽에는 백운산 아래 백운사까지 걷는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온갖 풍경들은 날마다 다른 모습이다. 나무와 풀과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참 신선한 기쁨이고 고마운 일이다. 백운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 따라 산책길이 계속 이어져 있다. 산 위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에 청둥오리 한 쌍이 노닐고, 금계국이 들녘에 지천으로 피어 손을 흔든다. 숲길엔 산딸기가 익자마자 누군가 다 따먹었는지 빈 가지마저 정답다. 숲속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온다. 뻐꾸기가 울면 꿩도 울고 꾀꼬리도 맑은 울음을 자랑한다. 이곳에는 물까치 떼가 서식하며 한꺼번에 모여 날아다닌다. 나무를 쪼는 오색딱따구리도 있다. 그 깃털의 화려한 색깔을 한없이 바라보게 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오색딱따구리를 만나는 날은 온종일 기쁜 날이다. 어느 날은 온몸이 녹청
오래전 일이다. 1990년도 신춘문예 시조 당선하고도 한참 지난 후였다. 그때 심사를 故 박재삼 시인께서 해주셨기에 댁으로 한 번 찾아뵌 적이 있었다. 서울 묵동에 살고 계실 때였다, 선생님은 이제 갓 문단에 얼굴을 내민 햇병아리 시인을 만나기 위해 한 시간 전부터 집 앞 큰길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시집을 여러 권 챙겨주시며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시인들이 시집을 보내주면 바로 엽서를 써요. 그래야 잊지를 않거든요. 긴말 안 쓰고 건필을 빈다, 그 정도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박재삼 시인은 시집을 받으면 꼭 엽서를 쓴다는 것이 문단에서도 소문이 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전국에서 시인들의 시집을 받으면 문자 메시지나 전자우편으로 잘 받았다고 인사를 한다. 작년 10월 중순 경 나는 다섯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그동안 전국에서 시집을 받기만 했기에 나도 시집을 우편 발송했다. 지금까지 받았던 시집 빚을 갚기 위해서다. 많은 선후배 시인들이 글을 보내왔다. 그분들의 메시지나 편지들을 고마운 마음에 몇 편 옮겨본다. “선생님! 보내주신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잘 받아 읽었습니다. 상 하나 끌어안고 긴 밤 피 달이고도 열리지 않는 미답의 시가 어떤 것인지
수원 토박이로 수원에서 오래도록 살다가 의왕시로 이사를 하게 됐다. 자연히 동네 이름이 생소하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수원시와 의왕시의 경계인 지지대 고개에서부터, 재미있는 동네 이름으로 버스 정류장 안내 방송을 한다. 의왕시 진입하면서 나오는 동네 이름은 ‘골사그내’ 다음엔 ‘고고리 마을’이 그것이다. 궁금해 지명의 유래를 찾아보았다. ‘사그내’는 옛 문헌인 ‘신동국여지승람’(1530)에 사근내원(沙斤乃院)의 ‘사근내’에 바탕을 둔 땅 이름이 나온다. ‘사근내’는 ‘사근내>사그내’로 굳어지게 되는데, 원래는 이 마을이 오전동(오맥이), 왕곡동(왕림), 골사내(왕곡동), 골우물(고천동) 등 사방에서 흘러들어오는 개울을 뜻하는 마을 이름에 옮겨 붙여진 이름이다. 모래가 흘러들어 이것이 모래를 뜻하는 ‘사근(沙斤)’이 쓰였거나, 이 개울이 모래 자갈이 유달리 많아 장마가 걷히면 물이 금세 마르는 내이므로, 물이 쉽게 잦아든다는 의미에서 ‘삭은 내’를 한자화 시킨 것이 ‘사근내(沙斤乃, 沙斤川)’일 가능성도 있다. ‘고고리(古古里)’ 이 마을은 통미 건너편 현 과천∼봉담 고속도로가 경수산업도로와 교차하는 지점의 서편 마을이다. 이 마을은 한자를 ‘古古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