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범의 미디어비평] 거짓 보도자료에 속아도 분노 조차 없는 언론   

2022.06.09 06:00:00 13면


기억을 환기하는 일조차 두려운 2014년 4월 16일, 언론은 ‘안산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제목으로 세월호 사건을 보도했다. 정부발표를 검증 없이 보도했다가 초대형 오보가 된 사례였다. 정부발표도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 극적인 사례다. 세월호가 침몰한 그날, 정부발표는 정치적 이해관계도 없었다. 더구나 학생들의 생명과 관련된 정부발표였기에 언론이 그대로 믿을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진실이 아니었다. 결국 언론이 전달한 거짓뉴스에 국민은 속았다. ‘기레기’는 이때 잉태됐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안 돼 국토교통부가 큰 잘못을 했다. 6월 4일 오전 “장관 바뀌더니 미래를 내다보는 ’영험한‘ 국토교통부”라는 제목의 기사로 SBS 김범주 기자가 세상에 알렸다. 김 기자에 따르면 선거 이틀 전인 5월 30일 월요일 아침 7시 37분, 국토교통부는 출입기자들에게 ‘GTX 확충으로 꼭두새벽 출근길 전쟁에서 해방’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보냈다. 보도는 그날 오후 3시부터 해달라는 요청이 덧붙여졌다. 


보도자료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5월 30일(월) 14시 GTX-A노선의 종착역인 동탄역 공사현장을 방문하여 지역주민과 만나…다양한 의견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로 시작한다. 이어 간담회에 참석한 동탄 주민의 목소리였다며 거짓 의견을 만들어 보도자료에 넣었다. 거짓 보도자료가 더 완벽해 보이도록 가상의 평택 주민도 동원했다. 이들이 간담회에 참석, 원희룡 장관에게 건의한 것처럼 조작했다. 경기지사 선거전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시점에서 경기도 표심을 흔들 수 있도록 조작한 것이다. 그것도 선거 이틀 전에.


선거라는 민감한 시기가 아니어도 이 같은 보도자료는 용납될 수 없는 중대 사안이다. 대국민 사기극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마했던 정치인이 장관으로 부임한 부처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더 놀랍다. 출입기자들을 감시견으로 여겼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주는 사료받아먹고 꼬리치는 푸들 정도로 취급해온 반증이다. 실제로 보도자료를 그대로 전재한 언론사는 연합뉴스, 경향신문 등 부지기수였다. SBS의 폭로기사가 있었음에도 이 사안을 보도했던 어떤 언론도 조작보도에 놀아난 사실을 독자나 시청자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SBS의 보도가 있었고, MBN이 “가상 보도자료내 망신당한 원희룡 장관”이란 기사까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 누리집 보도자료방에는 여전히 거짓 인터뷰가 포함된 보도자료가 방치돼 있다. 언론이 얼마나 무시당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거짓 보도자료 사건은 해프닝으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보도자료를 읽어만 봤어도 찾아낼 수 있는 속임수였다. 속아서 기사화했다면 이 사안을 보도한 언론사들은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SBS 김범주 기자는 2000년에 입사했다. 처음 보는 보도자료 조작이라고 증언한다.         

최광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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