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똥물로 넘쳐나는 자본주의. 모두가 다 똥 장사꾼”

2023.06.19 10:26:56 16면

117. 슬픔의 삼각형 - 루벤 외스틀룬드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주의 감독인 스웨덴의 루벤 외스틀룬드가 칸에서 두번째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 ‘슬픔의 삼각형’은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슬프거나 혹은 그 반대로 재미있거나 유쾌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찝찝하고 불쾌하며 심지어 反 희망적이고(비관주의나 염세주의란 말은 너무 약하다.) 우울해지는 작품이다. 물론 너무나 신랄하고 조소가 가득해서 반어적 의미에서 재미와 흥미가 가득 찬 작품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왜 지난해 칸 영화제가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 대신(감독상) 이 작품을 선택했는 가를 일응 수긍할 수 있게 한다. 칸은 두 가지 갈래에서 감독의 손을 들어 주곤 하는데 ‘매우 사회정치적인 작품이거나 아니면 매우 예술적인 작품이거나’이다. 외스틀룬드의 영화는 매우 사회적 리얼리티가 강한 작품이다. 이 세상을 묘사해 낸 내용들이 너무 적확해서 거꾸로 내용 하나하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칸 심사위원들은 지금 세상에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고 봤을 것이다.

 

 

‘슬픔의 삼각형’은 자본주의 세상에 대한 뛰어난 분석서이며 일종의 新 자본론이다. 아마도 마르크스가 봤다면 박장대소하고 웃으면서도 동시에 세상이 자신의 말이나 예언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는 내용이어서(자본주의는 망하지 않으니까) 소리 내어 울지도 모를 영화이다.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을 소개하기 어렵지만 세상은 도돌이표처럼 처음으로 돌아간다. 뒤집어진 계급관계는 또다시 뒤집어질 것임을, 원래대로의 계급사회, 그것도 더욱 양극화된 사회로 돌아갈 것임을 보여 준다. 우리는 쳇바퀴 안의 다람쥐이다. 돌아갈 수 없다. 잠시 그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수 없다. 그러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

 

2억 5000만 달러짜리 초호화 크루즈에서 화장실 매니저였던 에비게일(돌리 드 레온)은 표류한 섬에서는 자신의 모시던 손님과 상사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정상처럼 보이지 않는다. 왠지 캄보디아의 학살자 폴 포트를 연상케 한다. 그녀는 자신만이 고기를 잡을 수 있고 불을 피울 수 있다는 이유로, 또 폭파된 요트에서 가져 온 프리첼 과자를 다량으로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구명정을 차지하고 사람들을 부리기 시작한다. 지식인과 부자를 무조건 때려 잡으며 원시 공산제를 추구했던 폴 포트 정권의 미친 짓, 크메르 루즈의 광기를 서서히 내비치기 시작한다. 그녀는 심지어 과자를 미끼로 모델 남자 칼(해리스 디킨스)의 몸을 탐하기 시작한다. 칼은 같은 모델로 (계약의 관계처럼 보이는) 애인인 아야(찰비 딘)의 분노와 묵인 하에 새로운 지배자 에비게일의 늙은 몸에 봉사를 하며 섬 생활을 이어 나간다. 같이 표류한 사람들은 칼의 매춘 행위를 지켜보며 조롱은 해도 비난하지 않는다. 도덕과 윤리는 생존보다 뒤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외스틀룬드의 이 영특한 자본주의 분석서는 모두 세 개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칼&아야’가 1부, ‘요트’가 2부, 3부는 ‘섬’이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작품 가운데 가장 발칙한 오프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칼을 포함한 패션모델 남자들의 오디션장에서 웃통을 다 벗고 모여서 테스트에 앞서 선배 급으로 보이는 게이 방송 진행자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다. 이 진행자는 예비 모델들을 모아 놓고 상반된 표정과 몸짓을 보여 줄 것을 요구하는데 이런 식이다. “자, 당신은 발렌시아가 모델이에요. 도도한 표정을 지어 주세요. 자 그러면 이번엔 H&M 모델이에요. 그냥 착하고 평범한, 왠지 해피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봐요. 자 모두 발렌시아가! 다시 H&M! 다시 발렌시아가! H&M!“ 남자 모델 모두들 그가 시키는 대로 표정을 바꿔 가며 연기를 한다. 인간은 돈과 명성 앞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시키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징그럽고’ ‘귀엽게’ 묘사해 낸다.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모두 2부인 ‘요트’에 몰려 있다. 여기서 선장 토마스(우디 헤럴슨)와 러시아 부자 디미트리(즐라트코 버릭)는 뜬금없는 사상 논쟁을 벌인다. 토마스는 디미트리를 가리켜 러시아의 돼지 자본가라 부르고 디미트리는 토마스에게 미국 공산주의자라 하지만 선장은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라 하는데 디미트리는 마스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썼기 때문에 그게 그거 아니냐고 되받아친다.

 

‘선장 토마스의 세상 현실 인식=감독 루벤 외스틀룬드의 세계관’은 토마스가 디미트리와 같이 떠들어 대는 술주정 대사 하나하나에 다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의 노트를 뒤적이며 이렇게 말한다. 디미트리는 그런 그에게 선내 마이크를 대 준다.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선장의 얘기를, 좋거나 싫거나,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디미트리는 그런 그를 보며 ‘공산주의 나라에서는 항상 듣기만 해야 한다’고 비아냥 대지만 선장 토마스의 비판을 부인하지는 않는 표정이다.

 

“마틴 루터 킹, 로버트 케네디, 말콤 엑스, 존 F. 케네디 모두 미국정부가 죽였다. 미국은 민주적이고 정직하며 선한 타국의 지도자들을 죽였다. 칠레 베네주엘라 아르헨티나 페루 엘살바도로 니카라과 파나마 등등. 미국은 영국과 손을 잡고 중동을 망가뜨린 후 마음대로 국경을 그어 놓고 독재자를 앉혔다. 미국의 가장 돈 되는 사업은 바로 전쟁이다. 1918년 유진 뎁스의 말대로 전쟁은 정복과 약탈의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지배계급이 전쟁을 선포하면 피지배계급은 나가서 싸운다. 지배층은 당신이 전쟁에 나가서 도살되는 게 애국이라 주입해 왔다.”

 

 

요트 밖 바다는 엄청난 풍랑이 이는 중이다. 요트 안은 한마디로 뒤집어진 상태다. 사람들, 곧 온갖 명품과 보석으로 치장한 최고의 부르주아들은 모두들 뱃멀미로 토하고 난리가 아니다. 선장이 마련한 파티에서 최고급 음식을 먹는 과정도 흥미롭다. 사람들은 초면에 인사를 나누는데 어느 점잖은 척하는 노부부는 자신들이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수류탄 장사꾼이다. 디미트리는 자신을 똥팔이라고 부른다. 돼지 똥을 팔기 시작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비료 장사로 일확천금을 벌었기 때문이다. 디미트리는 이 선상 파티에 아내와 젊고 풍만한 정부(情婦)를 함께 데려왔지만 정작 두 여자는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돈이 있으니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디미트리의 늙은 아내(선니이 머레스)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이 오물을 토하는데 남편이 선장과 술을 마시며 정치적 논쟁을 벌이느라 노닥거리는 상황에서 혼자 거의 벌거벗은 채 객실의 화장실을 뒹굴며 구토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녀의 변기는 결국 똥물로 넘치기 시작하며 비싼 카펫이 깔려 있는 선내 파티 룸에 똥물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들이 마시던 고급 샴페인 모엣 샹동이 똥물 사이로 떠다닌다. 자본가는 디미트리 마냥 똥팔이이며 자본주의는 현재 똥물로 넘쳐나고 있음을 풍자한다. 미국의 공산주의자, 아니 마르크스주의자인 선장 토마스도 자신을 가리켜 ‘개똥 같은 사회주의자’라고 비아냥댄다. 왜냐하면 그저 자신이 하는 일이라곤 개똥철학만 나불대기 때문이다. 이른바 좌파 지식인들이 늘 하는 일이 그것인 것처럼.

 

3부인 ‘섬’ 부분은 조금 줄였으면 좋았을 법 하다. 명백히 1974년, 리나 베르트뮬러가 만든 ‘귀부인과 승무원(한국 비디오 제목 ‘무인도의 열정’)’과 그 리메이크작인 가이 리치 감독, 마돈나 주연의 2002년작 ‘스웹트 어웨이’를 벤치마킹한 내용 이자 확장판이기 때문이다. 3부를 조금 줄였으면 오히려 간결미가 돋보였을 것이다. 감독이 워낙 할 말이 많았던 듯이 보인다.

 

그 많은 수다 중에 감독이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여기에 담겨져 있다. 다시 선장 토마스를 통해서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면서 풍요 속에서 헤엄칠 때 세계는 빈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어. 너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맞다 그러는 거 아니다. 착잡한지고. 아주아주 착잡한 일이로소이다.

오동진 krh083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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