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31일 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곳은 종로1가사거리의 보신각 앞이다. 자정이 되어 서울시장과 그해의 주요 인물이 함께 보신각종을 ‘둥~~’하고 울리면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환호성이 방송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간다. 온 국민에게 전하는 기쁨의 아름다운 종소리로 33번을 타종한다. 그런데 타임머신을 타고 정조가 능행하던 1795년으로 돌아가도 같은 느낌이었을까?
보신각종은 밤 10시경에 28번, 새벽 4시경에 33번 쳤는데, 각각 인정(人定)과 파루(罷漏)라고 했다. 인정의 종소리는 ‘이제부터는 성문을 닫으니 들어오려 하는 자가 있으면 큰 벌을 내리겠노라! 도성 안에서도 돌아다니는 자가 있으면 똑같은 벌로 다스리겠다!’ 이런 의미다. 1980년대 초까지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함께 실시된 야간통행금지와 같다. 무서운 소리다. 파루의 종소리는 ‘이제부터 성문을 여니 도성 안팎을 돌아다녀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니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야간통행금지를 전제로 한 허락이 아름답게 들리긴 어렵다.
그러면 보신각종은 왜 거기에 만든 것일까? 당연하다 여기며 질문을 던지는 이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수도의 밤을 통제하는 중요한 기능의 건축물을 아무 곳에나 만들 리 없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수도 북경에서는 궁궐 자금성의 뒤쪽인 북쪽에 종을 치고 북을 두드려 시간을 알리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를 설치했다. 시장 입구다. 도시 사람들의 삶에 시장은 없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지만 하층민이 들락날락하는 곳이니 궁궐의 앞쪽이 아닌 뒤쪽에 배치했다. 그리고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통제가 어려운 공간이니 그 입구에 종루와 고루를 설치했다.
풍수의 원리로 만든 조선의 수도 서울에서 궁궐인 경복궁의 뒤쪽은 지기(地氣)가 주산 북악산에서 경복궁까지 흘러 연결된다고 인식한 신성한 공간이다. 그러니 그곳에 하층민이 드나드는 시장을 만들 수는 없고, 대신 궁궐의 앞쪽이 아니면서 남북대로와 동서대로가 교차하여 사람들이 드나들기 좋은 종로에 시장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거기에 밤의 시간을 통제하는 누각을 만들고 종을 단 것이다. 조선의 수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함 중의 하나다.
그런데 보신각의 종을 아무 때나 치면 통제의 권위를 세우기 어렵다. 그래서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에 종을 칠 수 있도록 정교한 시간 측정 방법을 개발했고, 낮에는 태양의 그림자 방향을 통해 시간을 알려주는 해시계면 만족했다. 그런데 정확한 시간을 아는 것이 진짜 필요한 시기는 밝은 낮이 아니라 어두워 통제가 어려운 밤이다. 이를 위해 개발한 시계 중의 하나가 별시계인데,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쓸모가 없다. 보신각의 종소리는 그런 날에도 여지없이 똑같은 시간에 울려야 했고, 그래서 개발한 것이 날씨에 상관없이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다.
도시 중 가장 강력한 시간 통제를 해야 하는 곳은 임금이 사는 수도이고, 그중에서도 궁궐이다. 물시계는 문명과 국가가 있는 곳이라면 수도와 궁궐, 궁극적으로는 임금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했고, 그래서 더 정확하고 멋진 물시계의 개발을 위한 노력이 지속됐다. 세종 때 장영실이 개발한 옥루(屋漏)란 기막힌 물시계는 그런 결과물의 최고봉 중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