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안티 E마트 전국운동본부 관계자는 “영세 점포 한 곳의 연간 매출이 1억원 정도인 반면 할인점은 점포당 2천억원”이라면서 “한쪽이 살면 한쪽이 죽는 제로섬 게임에서 죽는 쪽은 동네 슈퍼”라고 토로한다.
이 일은 비단 태백만의 사례는 아니다. 2003년 도내 롯데마트가 들어설 때도 중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한 ‘롯데 제품 불매운동’이 있었다. 또 대형할인점이 생긴다는 소식이 있을 때마다 지역 상인을 중심으로 한 불매운동 및 시위가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할인점의 매장 늘리기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4월초 발표한 ‘한국 유통업계 10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유통시장이 완전 개방된 지난 1996년 이후 10년 동안 슈퍼마켓 등 소규모 점포의 위상은 추락한 반면, 대형할인점, 편의점, 무점포판매 등 신업태는 급성장했다. 실제로 개방원년인 1996년 대비 대형할인점의 판매액은 779.6%, 편의점은 197.2% 늘어났으며, 무점포판매업 역시 통계조사를 시작한 2000년 대비 70.0% 증가했다. 그러나 슈퍼마켓과 구멍가게 등이 주를 이루는 기타소매업은 각각 19.4%, 12.0%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대형할인점의 급성장세는 유통업태 별 점포 수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1996년 28개에 불과하던 대형할인점이 2004년말 기준 275개로 10배가량 증가했고, 개방 원년 70만6천개 정도로 추산되던 종업원 4인 이하 영세 소매상 가운데 8만개 점포는 사라졌다.
이는 도내의 사례에서도 잘 들어난다. 대형 할인점의 경우 1998년 9개에서 2003년 53개, 현재 57개로 533% 증가했다.
반면, 재래시장은 1999년 205개에서 2003년 177개로 16% 하락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올해 9월 수원에는 이마트가, 화성에는 12월 까르푸가 개장하는 등 대형 할인점의 입점 개획 및 부지 선정 등은 줄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에는 할인점과 동네 슈퍼마켓의 중간 형태인 SSM(슈퍼슈퍼마켓)이 새로운 유통업태로 성장하면서 중소상공인의 시름이 더 깊어지고 있다.
SSM은 대형 할인점의 식품매장을 따로 떼어다 동네에 옮겨놓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동네 슈퍼마켓과 할인점의 장점만을 담았기 때문에 할인점과 동네 슈퍼마켓의 틈새시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또 유통업계의 입장에선 주차 면적과 대형 부지를 확보해야하는 할인점보다 점포 개설이 쉽기 때문에 GS유통·롯데쇼핑·삼성테스코 등은 지난해부터 지방 중소규모의 수퍼체인 등을 잇따라 인수해 SSM 점포수를 늘리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주변에는 외국의 대형할인점들이 들어와 동네 슈퍼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과 저렴한 가격, 친절한 서비스에 사람들은 대형 할인점으로 달려가고 물품의 종류나 가격 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 구멍가게식 슈퍼들은 문을 닫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물건을 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 그들을 환영한다.
유통업계의 증가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싸고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문제는 이런 대형 할인마트들이 증가하면서 중소업체들이 설땅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2004년 12월 경기도내 대표적인 서점이었던 경기문고가 매출저조를 이유로 문을 닫았다. 수원역사 안에 애경백화점이 생기면서 '북 리브로'라는 거대 서점이 들어서 손님유치가 어려워지자 문을 닫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사례는 비단 경기문고만의 사례가 아니다. 수원시 권선동에서 15년째 S슈퍼를 운영하는 이모씨(46세)는 2년 전 GS마트가 500m 떨어진 곳에 들어서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GS마트가 생긴 직후 35%가량 떨어진 매출 때문에 매장 내부를 바꾸는 등 부분적인 리모델링까지 했지만 매출은 매년 2~3%씩 떨어지고 있다.
이씨는 “공산품에 대해선 가격 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과일을 주로 진열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안 팔린다”며 “대형 할인점과 가격, 서비스 면에서 맞설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역민들과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시 인계동에서 H 마트를 운영하는 강모씨(35세)도 "시청 옆에 홈플러스가 들어선 이후 매출이 계속 하락한다"며 “월수입이 100만원도 안돼는 형편인데 가게를 계속 꾸려 나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고 토로했다.
이렇듯이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면서 많은 업체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으며 대부분이 업종 변경이나 영업중단을 선택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소매 유통업 입점실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대형할인점은 100%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중소영세업체들은 20%가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남부 슈퍼마켓조합 홍광표 이사장도 “지방 중소도시에 대형 할인점 한 개가 생기면 슈퍼마켓, 화장품, 의류, 신발가게 등 평균 2천여 개의 가게가 피해를 본다”며 “정부가 중소상인들을 위해 지원을 한다고 해도 거대 자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유통산업경제학과 설봉식 교수는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차별화 뿐"이라며 "지방 중소상인들은 대형 할인점에 비해 고객의 욕구와 필요를 잘 알 수 있는 만큼, 색다른 토착 상품화 계획, 친환경적 소매경영, 고객 서비스의 증대 등으로 단골 고객 관리를 중시하는 작지만 강한 경영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설 교수는 또 "대형할인점들도 좁은 상권 속의 소매 유통업체에만 집착하지말고 지방 중소유통업체를 대상으로한 도매유통의 기능을 갖춰 미국의 샘스클럽과 같은 모델로 윈윈전략을 세우면 지역 경제도 살리고 대형 할인점도 커다란 경영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도 중소상인들의 어려움을 잘 인식한 가운데 대형할인점의 규제완화 정책을 펴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