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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혼인빙자간음죄 위헌결정을 보며

판결로 사회의식 변화 감지
사형제 헌재판결 사뭇 궁금

 

옛 선조들의 풍속화와 문헌을 보면 그 시대의 모든 생활상과 사회의식이 드러난다. 초가집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고, 물레로 실을 자아 베틀로 옷감을 짜 입었으며, 날이 어두워지면 등잔에 불을 밝혔다. 젊은 여자가 남편과 사별하면 평생을 수절하며 정절을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나라에서는 열녀문을 세워 칭송하였다.

그 시대의 생활과 사회의식을 알 수 있는 것은 비단 그림, 문헌뿐만이 아니다. 판결과 사건도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1970년대 근대화의 시기에 월급날이면 월급봉투를 노린 절도범들이 판을 쳤으나 모든 월급이 통장으로 자동이체되면서 월급봉투를 노리는 범죄는 사라졌다. 그 대신 최첨단 산업기술을 유출하는 산업스파이 범죄가 등장하고, 최첨단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컴퓨터 이용 범죄에 관한 규정이 형법에 신설되었다.

또 석탄이 주연료이던 시대에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사글세방 임차인의 유족들이 집주인을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이 많았으나 이제는 원자력 방사능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이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그 시대의 소송과 판결을 통하여 사회현실과 사회의식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올해 11월 26일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위헌결정을 하였다. 똑같은 혼인빙자간음죄 규정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2002년에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합헌이라고 판시하였던 것을 보면, 혼인빙자간음죄는 헌법이론상 태생적으로 위헌이 아니라 사회의식의 변화에 따라 위헌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이야 성문화가 많이 개방되었지만, 형법에 혼인빙자간음죄가 처음 규정된 1953년만 해도 여성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대상에게만 몸을 허락하는 것이 그 당시의 사회의식이었고, 그리하여 혼인을 할 것처럼 기망하여 여성의 정조를 유린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범죄였다. 1950년대 고등 교육을 받은 70여명의 여성을 농락한 박인수가 혼인빙자간음죄의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많은 이들이 판결에 박수를 보냈을 정도로 혼인빙자간음죄는 당시 사회구성원들로부터 옹호되던 법조항이었다. 그리고 혼인빙자간음죄가 여성의 보호장치로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성부가 혼인빙자간음죄 규정이 여성을 비하하고 남녀평등에 어긋난 규정이라며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

재판부도 “최근 우리 사회에 성개방적인 사고가 확산되면서 성과 사랑은 법으로 통제할 문제가 아닌 사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으며, 성적 자기결정권이 갈수록 중요하다.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법의식에 많은 변화가 생겨 법률이 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할 필요성은 이미 미미해졌다”고 하며 달라진 사회의식을 지적했다.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의식에 많은 변화가 생겼으므로 이제는 여성의 착오에 의한 혼전 성관계를 법률로 규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성인이 어떤 종류의 성행위와 사랑을 하건, 그것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하게 되면 그 법조항은 소급적으로 효력을 상실하고, 그 법조항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법원에 재심청구를 할 수 있으며, 형사보상금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혼인빙자간음죄와 같이 제정 당시에는 형벌로서 가치가 있던 법조항이 단지 사회의식의 변화에 따라 위헌결정이 난 경우에까지도 소급적으로 무효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위헌결정 이전에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받은 모든 사람에 대하여 소급적으로 법조항을 무효화하고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하는 것 자체가 국민들의 의식에 반한다고 볼 소지가 많다고 보인다.

이제 조만간 사형제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에 7대 2로 사형제에 관하여 합헌 결정을 하였다. 사형제도에 관한 국민들의 의식은 얼마만큼 변하였을까? 사형제에 대하여 어떤 결정이 나올지 사뭇 궁금하다.

프로필
▶1964년 전북 순창 출생
▶198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2006년 전주지법 부장 판사
▶2007년 인천지법 부장 판사
▶2008년~현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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