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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수석(首席)의 비애(悲哀)

 

어느 작은 집단이라도 우두머리-수장(首長)은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다.

지식이 부족하면 용기가 넘치던가, 치밀하지 않으면 임기응변이 풍부하거나 하다못해 어떤 일이 실패했을 때는 “내 탓이로소이다” 이런 대범함의 소유자든지 이런 특징 없이 우두머리가 되고자함은 아주 무모한 짓이다.

설령 뜻을 이루었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 이제까지는 일등으로 달려온 사람이 승진에 앞서고 그 조직에 수장이 되는 것은 크게 상식에 벗어난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대법원장의 이력을 보면 대학, 사법연수원 수석졸업, 각 군 참모총장과 주요지휘관은 사관학교 수석졸업, 이런 기사를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요즘 수석(首席)들의 수난 시대일까?

가까운 예를 들어본다. 서울에 위치한 어느 대학 이야기, 정경대에 6개 학과가 있는데 수석 졸업생들 가운데 2명만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절반도 안 된다는 말이다. 그 대학의 정경대학 취업률은 80%에 가깝다. 수석을 기피하기 때문이란다.

학창 시절에 학점관리를 위해 집-학교-도서관만 돌아서 사고는 경직돼 있고 교우범위는 좁아 사회생활에 도움 줄 수 없다고 평가해 버린다.

대학을 중퇴한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 형의 독창성 있는 인간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라나... 창조란 하나의 틀을 깨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데 하면서 규격화된 틀에서 경쟁은 소용없다는 말이다.

일선 교단 선생님들도 범생보다 약간 껄렁한 친구들의 장래를 밝게 예측하기도 한다.

주위를 들러보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한 우물을 판 사람이 곁눈 돌린 사람보다 낮게 평가되는 것은 어림없는 얘기!!!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학창시절 수석으로 졸업을 한 사람들이 다행히(?)몇 명 있다. 처음 인사를 나누었을 땐 전혀 몰랐지만 주위에서 귀띔을 해줘서 새삼 달리 보였다. 수석은커녕 한 학기에 일등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지라 그 과정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대단하구나 생각을 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 모두 공통점이 있다.

첫째, 매우 집중력이 강한 것이다. 결코 스스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금시 표시난다.

둘째, 매우 겸손하다. 철저하게 자신을 낮춘다. 아마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자면 어느덧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보호막을 쌓기 때문에 이런 외적태도가 습관화 되었는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그 중 한 명은 “당당하면 거만하다고 하고, 겸손하면 소극적이라고 하고” 처신의 어려움을 그것도 퇴임식에서 토로한 적이 있다.

그리고 쓸데없는 악의적인 소문에 대해 “나무는 고요한데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바람이 멈추질 않는다”라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당하는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수석이 되는 순간 평생 공인(公人)이 되고야 마는가? 아쉬운 점은 낭만이다. 공(公), 사(私), 생활도 그리 윤기가 보이질 않는다. 모든 기준이 국가와 조직, 이럴진대... 별로 재미가 없다.

스쳐온 시간을 회상해 보면 싱긋 웃는 경우는 가끔 있는데, 큰소리로 껄껄 웃어 본 기억은 없다. 자기감정을 지나치게 엄격히 통제하는 듯하다.

송나라의 대표시인은 유영(柳永)이다. 온통 주위가 시샘범벅이었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이렇게 노래했다

꿈에서 깨어난 것은/한줄기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와/

차가운 등불을 꺼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술이 깨버리면/섬돌에 떨어지는 밤비소리를/어떻게 또 참아낼 수 있을까? 달콤했던 만남이 슬픔으로 변했으니.......

그리고 혹시 주위에서 ‘못 오를 나무’로 아예 간주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여간 수석의 불투명한 장래는 그 조직의 슬픔이다.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 前 방송인·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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