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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산대희(山臺戱)

 

극장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서양 예술은 왕족, 귀족, 부유계층 등 특권층의 전유물로 출발했으며, 이들의 취향에 맞는 궁정음악, 오페라, 순수미술 등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니 대중의 예술 참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고급예술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는데 복지국가 이념에 따라 예술도 공공재의 하나로 인식해 대중이 저렴한 가격으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이 적극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예술의 개념은 건물 중심의 제도권 공간에서 소수의 예술가와 참가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방적 소통과 교류를 넘어서 새로운 소통의 공간을 찾아 나선다. 예술에 대한 인식, 예술과 사람의 관계, 예술가와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 사회변화를 위한 예술의 역할 등을 새롭게 모색하고, 주류 예술세계의 대안을 제시하는 공동체 예술의 개념도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거리로 나선 예술과 축제가 큰 특징 중 하나다. 우리 공연예술은 근대화 과정에서 실내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공연예술에 주도적인 자리를 내어주기는 했지만 전통예술인 연희나 의례는 공간 활용과 담아낸 철학이 매우 현대적이고 진보적이었던 셈이다.

제의와 놀이 결합한 야외공연

산대희(山臺戱)는 신라 진흥왕 시대에 시작된 ‘산 모양의 구조물에서 벌이는 연희’로, 전설 속에 등장하는 삼신산을 형상화한 산대에서 각종 연희가 펼쳐진다. 조선시대에는 20m 이상의 좌·우 두 개의 산대와 신선, 동·식물, 궁전, 사찰, 탑 등의 설치물 사이에서 연극과 줄타기를 비롯한 각종 놀이가 행해졌는데, 때로는 현대 거리극의 장치물처럼 이동식 무대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산(山)은 고대로부터 신이 살고 있는 성역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다. 한민족의 기원을 나타내는 단군 신화는 환웅이 태백산 정상에 있는 신단수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다고 한다. 이처럼 산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우주목이고 제단이다. 산대희는 풍요에 감사하고 안녕을 기원하는 원시 공동체의 제사와 놀이가 공연 형태로 결합한 야외 축제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서구에서 주력하는 야외공연의 철학과 내용이 우리 전통연희인 산대희에서 이미 완성도 높게 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에서 이뤄진 중앙의 산대희가 중심이 되었지만 광대들은 주로 경기도에서 동원되었다고 한다. 광화문 앞은 현재 교통과 안보상의 문제로 적절한 산대희 재현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수원시는 산대희의 상징성을 지니기에 충분한 도시이다. 새로운 문명세계를 꿈꾸던 개혁군주 정조가 실사구시와 실용주의의 결집체인 화성을 축성했는데, 그의 꿈은 화성을 완성하고 벌인 잔치에서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이 잔치는 ‘낙성연도’라는 그림에 잘 묘사된 것처럼 클래식과 대중예술이 어우러진 문화민주주의가 반영된 열린 음악회이자 상하동락의 큰 축제였다. 그 중심이 ‘산대희’다. 그간 몇몇 기획자나 기관에 의해 산대희가 재현되기도 했지만 그 의미와 내용을 제대로 담아낸 경우는 거의 없다. 팔달산을 배경으로 행궁광장에서 펼쳐지는 산대희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산대희 재현의 맏형 자격을 갖춘 곳이다.

수원 행궁광장 문화상품으로

수원이 서둘러 산대희를 전략적인 문화상품으로 개발해야 할 이유다. 과거의 형태와 내용을 재현하는 한편 우리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산대희로 발전시켜야 한다. 산대희가 대규모 야외축제에서 표방하는 문화민주주의의 대의를 그대로 담고 있고,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모든 예술 프로그램이 포함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예술가 몇 사람이 뚝딱거려 만드는 것이 아닌, 수원시민과 지역의 예술가들이 함께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만드는 산대희 시리즈가 수원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기를 바란다. 외국의 야외 공연물이 한국의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 대접을 받는 현주소를 보면서 정조의 꿈과 우리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부끄럽기만 하다. 이제 수원시와 수원문화재단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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