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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청춘은 가슴속에 있다

 

<서른 즈음에>. 가수 김광석이 1994년 발표한 곡이다. 19년이 흘렀으니 지금은 쉰 언저리가 됐을까. 발표 당시 이 노래를 듣고 공감하며 고뇌했던 젊은이들. 그들도 노랫말처럼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어느덧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 탄식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인가. 최근 들어 이들과 같은 세대인 중년들의 문화적 욕구가 뜨겁다. 대중음악에서 영화 연극 뮤지컬 도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내재된 문화적 감수성을 폭발시키면서 중년의 힘도 발휘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중년들의 반란(?)은 작년 초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영화 예매에서부터 비중을 높이더니 어느새 문화계 전반에 영향력을 끼치고 올해 들어서는 그 기세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최근엔 젊은 여성이 주도한다고 알려진 뮤지컬 쪽으로까지 약진했다. 때문에 공연시장의 새 블루오션이라는 별칭도 얻었고, 기획사들은 흥행의 키워드라는 애칭도 붙여줬다. 개최하는 공연마다 그들의 참여도가 30~50%를 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내면에서 싹튼 문화적 갈증

거슬러 짚어보면 중년들에게 문화적 욕구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2011년 초 모 방송 예능프로그램의 세시봉 특집이 아닌가 싶다. 트윈폴리오의 멤버 송창식과 윤형주, 거기에 조영남과 김세환, 이장희까지 등장한 이 토크 콘서트는 50대 이상에겐 아련한 추억을, 40대 세대들에게는 선배들의 감성을 공유하는 계기를 부여했다. 386세대라 불리는 중년에게는 신선한 문화적 충격도 주었다. 전국투어에 나선 콘서트는 가는 곳마다 매진됐다. 그곳에서 중년들은 신세대들에게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마음을 털어내듯 환호했다. 그리고 이런 환호는 문화적 ‘나’를 발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1960~1973년 사이에 태어나 중년이라 불리는 이들 세대는 위로는 세시봉 향수를 간직하고 있으면서 아래로는 90년대의 대중문화와도 친숙하다. 학창 시절엔 대중음악은 물론 팝·록·발라드·댄스 등 장르별 경험도 풍부하다. 이러한 내면적 여건이 문화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유도했는지도 모른다. 지난 4월 있었던 조용필 신드롬도 이런 중년들이 있어서 가능한 사건이었다. 19집 <헬로>를 열렬히 환호하며 삽시간에 앨범 20만장을 사들인 대중도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뮤지컬이 펼쳐지는 공연장마다 40대 이상 아줌마와 넥타이 부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심지어 클래식공연에도 중장년층이 대거 몰리며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그야말로 장르에 관계없이 중년 파워를 실감나게 하는 그런 세상이다.

감성자극만으로 지속 안 돼

중년들에게 문화적 욕구가 커진 것은 그들이 살아온 시대적 상황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40~50대인 중년의 젊은 시절은 정치적으로 매우 암울한 시대였다. 대통령의 죽음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29선언 등등 역사의 현장을 몸으로 겪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암울함 속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그들 나름의 대학 문화를 바탕으로 청년 문화를 꽃피던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문화적 소비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인 90년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문화욕구가 전반적으로 위축됐고, 가지고 있던 희망마저 접어야 했다. 이 세대들이 최근 어느 정도 경제 지위를 갖고 안정된 문화 소비를 이어가면서 그때 그 시절 문화 감수성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세대를 겨냥한 예술 장르들이 재탄생되는 등 예전에 비해 중·장년층을 겨냥한 문화 장르가 다양해진 것도 중년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였다는 분석이다.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 누군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소비하고 수용하는 이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다. 모처럼 형성된 대중문화의 파워 벨트가 지속적으로 갈증을 해소하려면 그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문화계도 진화해야 한다. 흥행을 위주로 과거의 감성만을 자극하는 문화 코드로는 지금의 현상을 일시적으로 머물게 할뿐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하진 못한다. 거기에 주체인 중년이 화답할 때 우리의 문화는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라 확신한다. 청춘은 가슴속에 있는 것이다. 올여름 휴가 때 젊음의 향수를 자극하는 숲속 뮤지컬이나 콘서트를 한 번 더 찾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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