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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국민독서휴가제

 

보름 전인 지난 2일 아침 ‘남한산성’ ‘칼의 노래’ 저자 김훈 작가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을 찾았다. ‘책을 읽는 국회의원들의 모임’에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김 작가는 이날 ‘작가로서 본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1시간 동안 강연했다.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매우 진지하게 듣고 대화시간엔 많은 질문도 쏟아냈다. 의원회관을 찾은 작가는 김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6월 초에는 영화 ‘고령화 가족’의 원작을 쓴 소설가 천명관 작가도 여기서 강연했다.

요즘 이처럼 작가 초청 강연회를 매월 갖는 국회의원들의 책 읽는 모임이 원내 인기모임 반열에 올랐다. 신학용 의원(인천 계양갑·국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만든 이 모임은 비록 결성 두 달밖에 안 됐지만 여야의원 30여명이 초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엔 여기저기 언론의 조명도 여러 차례 받았다.

모임에서도 밝혔듯 책을 읽는 이유는 당연히 자기 성찰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이런 면에서 국회의원들이 책읽기에 스스로 나섰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 안 한다는 인식이 높은 국회의원들이 책을 읽는다고 하니 거는 기대도 높다. 아울러 독서 문화 전파와 불황인 출판계도 활성화 되는 촉매제 역할을 하면 좋겠다. 하지만 책 읽기가 당연함에도 국회의원들의 독서 모임이 언론의 관심을 끄는 것을 보며, 한편으론 반갑기도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함 또한 남는다.

매월 작가 초청 강연회 열어

책읽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조선시대만 보더라도 책읽기는 한 특권층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고 신분에 따라 그 명칭도 다양했다. 왕에게는 경연, 세자는 서연, 문신에게는 사가독서, 잡직 종사자는 습독관제도를 두고 독서를 통하여 인격과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계기를 마련토록 했다. 책읽기에 중요함을 일깨운 이는 아무래도 세종대왕이 아닌가 싶다.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를 지속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신하들에게 높은 학식과 교양을 쌓도록 했으니 말이다.

1426년 세종은 촉망받는 젊은 인재들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1년 정도 휴가를 주는 이 제도를 시행했다. 현재 맡고 있는 직무로 인해 책 읽는 데 전심할 겨를이 없으니, 지금부터 본전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전심으로 글을 읽고 성과를 내어 나라에 보탬이 되라는 게 제도의 핵심이다. 관리로 등용된 인재들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던 이 제도는 일명 독서휴가제로도 불린다. 최소 1∼3년에 이르는 사가독서 기간, 신하들은 집 혹은 산사를 오가며 자유롭게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읽은 내용을 정리하여 월과(月課)로 냈다. 왕은 식량과 술 및 물품 등을 내려주며 독서를 권장하기도 하고, 과제를 주어 수시로 그 결과를 평가하기도 했다. 성종 때에는 독서당도 지어 학문에 더욱 몰두할 수 있게 배려했다. 한양에만 3곳이 있었다. 옥수동 근처 한강변에 있던 동호당(東湖堂), 마포에 있던 서호당(西湖堂), 용산에 있던 남호당(南湖堂) 등이 그곳이다. 동호당은 이율곡이 특별휴가를 받아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저술한 곳으로 유명하다.

빅토리아 영국 여왕은 셰익스피어 버케이션(Shakespeare Vacation)을 시행하면서 신하들에게 책읽기를 권장했다. 고위직 관리들에게 3년에 한 번씩 휴가를 주면서 셰익스피어 작품 다섯 권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토록 한 게 그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빅토리아 여왕의 이 같은 배려는 작품을 통해 인간관계의 내면을 섭렵, 법이나 규범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국민들의 심오한 곳까지 어루만져주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독서에 전념할 수 있는 휴가

지난 3월 주한영국문화원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한-영 독자(讀者)개발 국제 세미나를 열었다. 독자에게 독서 그 자체의 즐거움을 깨닫고 스스로 책을 찾아 읽게끔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됐다. 세미나에서 문체부 관계자는 책 읽는 사회 풍토 조성과 독서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 제고를 위해 다양한 독서문화 진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도 밝혔다. 책 읽지 않는 사회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사정이 이러하고 기왕 국회의원들이 독서모임에 나섰으니 이번 기회에 ‘국민독서 휴가제’라도 입법함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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