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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뭉크의 일생으로 바라본 삶과 죽음의 역설

 

 

 

강렬하고 꼬불꼬불한 선들의 배경 위로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한 인물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바로 이 작품 ‘절규’이다. 절규와 절규를 그린 작가 뭉크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든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이미지와 함께 음산하고 소름끼치는 기분을 떨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이 이야기해주듯이 그의 인생은 병약함과 가족들의 죽음으로 점철돼 있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병으로 죽었고, 그 충격으로 누이도 정신병을 앓다 죽었다. 그의 건강도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일생동안 잦은 병치레를 했다.

그런 그의 불행들은 작품들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그의 작품들은 침대 위에 스러져 있는 여인, 병든 소녀, 권총을 든 사람,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사람 등으로 가득하다. 이 병약한 화가에게는 정신병으로 고통 받다가 37세에 죽은 고흐나, 독감으로 죽은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따라 28세에 생을 마감한 에곤 실레와 같이 비명(非命)이 어울릴 법도 한데, (화가에게는 외람된 말이지만) 놀랍게도 뭉크는 80세까지 살았던, 그 시절에는 보기 드물게 장수했던 화가였다.

어쩌면 화가라는 천직이 그의 내면에 쌓여있던 끔찍한 불행과 고통을 달래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불면증과 몽유병으로 밤은 늘 고통스러웠지만, 화가는 그림을 그리며 견뎌냈다. 뭉크는 꼭 필요한 용무를 볼 때를 제외하면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을 정도로, 작업에 열중한 화가였다.

어린 시절의 불행은 그의 작품의 소재가 되었고 자신의 심약함과 악몽도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언제부턴가 자신의 불행을 전적으로 불행으로만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젊었을 때 그는 술을 좋아했었지만 그림에 방해가 될 정도로 마시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나마도 노년에는 아주 조금만 마셨다. 외국을 방랑하던 시절 외로움에 지쳐 도박에 빠지긴 했었지만, 도박이 그림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단번에 손을 뗐다.

뭉크는 말년에 고향인 노르웨이로 돌아와 크라예외라는 도외지에 집을 짓고 살았다. 대형 작품들을 보관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넉넉한 집이었다. 작품을 유난히 아껴서 말년에는 작품을 거의 팔지 않았고, 꼭 작품을 팔아야 하는 경우에는 한 점을 더 그려서 보관을 했다고 한다.

노르웨이의 자연은 작가에게 새삼 큰 영감을 주기도 해서 그는 이곳에서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을 담은 풍경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뭉크 특유의 우울한 회색조는 그대로였지만, 공포과 우울로 가득했던 이전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이 시기의 풍경화는 경쾌해 보이기까지 한다. 젊은 시절 그는 신앙이 돈독했던 아버지와 가족들을 배려해 반(反기)독교적이고 혁명적인 젊은이들의 문화에 과감히 뛰어 들 수는 없었지만, 말년에는 노동자들의 삶과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이들을 작품으로 그리기도 한다.

이렇듯 에드바르드 뭉크의 삶은 꽤나 역설적이다. 한편 그의 일생은 예술가라는 천직에 대하여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 작업이 아니었으면 화가는 자신의 불행을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에 담긴 충격과 공포의 이미지들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뭉크가 남긴 그림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1893년 작 ‘절규’는 독일에서의 채류를 마친 직후 오슬로에서 완성한 그림이다. 독일에서 열린 뭉크의 개인전은 독일사회 전체에 엄청난 스캔들과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평소 과대망상을 앓고 있던 뭉크답지 않게 그는 독일의 언론이 자기에 대해 연일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화가에 대한 관심으로 태연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프로이드가 본격적으로 인간의 병적인 심리에 대해 저술하기 이전에 뭉크는 인간의 심연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미지화했고, 독일 사회는 뭉크의 작품이 지닌 큰 시사점을 발견했으며, 단언컨대 이 시절의 작품들은 독일의 표현주의의 태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뭉크는 작품이 추호의 위선도 담고 있어서는 안 되며 작품은 오로지 삶의 정수만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의 작품에 담긴 죽음과 질병, 짙은 우울은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이자 화가의 양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조금 만 더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그의 작품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과 에너지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화가의 삶과 작품들은 때로는 역설적인 시선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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