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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가 만든 조선식 천문시계는 아날로그 컴퓨터”

보물로 지정된 실학박물관 소장품 ‘혼개통헌의’
한·중·일 현존 유일 ‘아스트로라브’ 실물 공개
서자 출신 실학자 유금, 천문학·수학에 몰두
1787년 서양 천문시계 조선식으로 해석해 제작

 

 

 

실학박물관 ‘실학자 유금의 혼개통헌의’ 강연회

“시간을 안다는 것은 천체의 움직임을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스트로라브, 즉 혼개통헌의는 기계식 시계가 나오기 전까지 그 역할을 해낸 가장 정확한 천문시계였습니다.”(김태희 실학박물관장)

실학박물관(관장 김태희)은 지난 29일 혼개통헌의 보물 지정 기념 강연회 ‘실학자 유금의 혼개통헌의’를 개최하고 ‘혼개통헌의’의 실물을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태희 실학박물관장을 비롯해 정기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와 전국의 실학자 후손 모임인 실학패밀리 등이 참석했다.

행사에서 정기준 교수는 보물 혼개통헌의와 제작자인 유금 등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6월 26일 실학박물관 소장품 중 처음 보물(제2032호)로 지정된 ‘혼개통헌의’는 동양 삼국인 한·중·일에서 현존하는 유일의 ‘아스트로라브’이다.

아스트로라브는 천문의기로, 본래 2천여년 전부터 아랍세계에서 애용돼 오다 중세 유럽으로 전파됐고 이후 르네상스 시기에 인기의 절정을 맞았다.

특이한 점은 이 의기로 시간에 관한 문제는 물론, 태양과 별들의 위치에 관한 문제 등의 정확한 답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를 보고 의기를 ‘아날로그 컴퓨터’라고 명명했다.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데, 의기는 그 복잡한 계산을 단번에 해결해줘 나타난 눈금만 읽어내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아스트로라브라는 말 자체가 별이라는 의미의 ‘아스트로(Astro)’와 잡아낸다는 의미의 ‘라브(Labe)’를 결합한 명칭이다.

그런데 아스트로라브라고 불리면서 ‘혼개통헌의’라는 고유한 명칭으로도 불리는 이 의기는 동양의 전통 우주론인 혼천설과 개천설을 하나의 원판형 의기에 통합한 천문시계로, 중국을 통해 전래된 아스트로라브를 실학자 유금이 지난 1787년에 조선식으로 해석해 만든 천문 도구이다.

유금은 서자 출신으로 음악을 좋아하고 인장을 잘 새기는 재주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수학과 천문에 관심이 많았다.

재미난 점은 유금은 북경 연행을 세 번이나 다녀왔는데, 이 경험이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는 연행을 다녀온 뒤 본래 이름이었던 ‘유련’에서 ‘유금’으로 개명했고, 서양 선교사들의 서적을 탐독했다.

 

 

 

 

또한 그는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 등 벗들의 시를 각각 100수씩 총 400수를 뽑아 만든 ‘한객건연집’을 편찬해 이조원과 반정균 등 청나라 문인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남긴 저술은 안타깝게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천문학과 수학에 몰두한 그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담긴 천문의기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난 2002년 일본 시가현 오오미하치만시의 토기야가 일본 동아천문학회 이사장인 야부 야스오에게 이 의기의 검토를 의뢰하기 시작하면서 공개된 것이다.

처음 이 아스트로라브가 일본에서 공개될 때는 누가 만든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후에 의기의 앞면 위쪽 고리 부분에 ‘유씨금’이라는 인장이 고문헌 연구자인 박철상에 의해 해독되면서 제작자가 유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 유금이 아스트로라브를 조선식으로 제작한 ‘혼개통헌의’는 별이나 태양의 고도를 관측해 현재의 시간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정 교수는 혼개통헌의의 모형을 가지고 그 원리를 상세히 설명했다.

혼개통헌의는 앞면에 두 개의 원반이 있는데, 고정된 원반은 모체판으로 하늘의 고도와 방위가 그려져 있다.

또 전반 혹는 레테라고 하는 회전원반에는 북극을 중심으로 남위 23.5도까지의 하늘이 모두 그려져 있는데, 여기에는 태양의 1년간의 궤도인 황도눈금(날짜눈금)이 함께 그려져 있어 태양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

고정원반 가장자리에는 시간표시를 해놓아서 가늠자로 태양과 시간표시를 맞추면 현재의 시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혼개통헌의의 앞면은 계산용 의기의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 뒷면은 관측용 의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의기를 고리에 수직으로 매달아 규통으로 태양 또는 특정 항성의 고도를 측정해, 이 고도를 앞면에 적용하면 천문계산을 자동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어 정 교수는 실학박물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천문교육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정 교수는 “이 의기는 하늘의 구조와 움직임을 매우 정확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피교육 대상의 수준에 맞춰 하늘을 교육하는데 맞춤”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 한 김태희 실학박물관장도 혼개통헌의의 의미와 실학박물관의 역할 등에 대해 얘기했다.

김 관장은 “천문과 지리에 대한 인식이 깊어질수록 세계관이 바뀌게 되는데, 세계관은 우리를 객관화 시킬 수 있는 것”이라며 그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이어 “아스트로라브는 간단한 물건으로 보이지만, 과학자들은 이를 보고 여기에 우주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며 “휴대폰에 온갖 것들이 담겨 있듯이, 여기에는 천체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김 관장은 “서자 출신인 유금이 아스트로라브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식으로 다시 제작한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처럼 주류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의도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 역할은 실학박물관이 분명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할 부분”이라고 전했다.

/최인규기자 choiin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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