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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의 향기]개인사 기록의 백미 - 이문건의 묵재일기

 

 

 

 

 

『묵재일기(默齋日記)』는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이 41세 때인 1535년부터 죽던 해인 1567년까지 30여년간 쓴 개인 일기이다.

그 가운데 결실(缺失)된 것을 제외하고 17년 8개월분 10책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데 이문건은 묵재일기 외에도 조선시대 사대부가 쓴 최초의 육아일기인 ‘양아록(養兒錄)’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그가 쓴 『묵재일기(默齋日記)』를 통해서 당시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일상생활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사료들이다. 이 자료에는 부부간의 갈등은 물론, 하층민들의 생활 방식, 노비들과의 갈등, 양반들의 풍류(風流) 등 일반 백성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다양한 생활기록들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은 역시 건강과 질병에 관한 내용이다. 특히 질병과 약재, 처방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의 질병 상황과 의료체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과거에는 오늘날과 같이 의료시설이나 의원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개인의 질병은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할 만큼 의료 시스템은 열악했다. 그러므로 식자(識者)들은 스스로 의약과 치료법을 공부하여 자신과 가족은 물론 주변 환자들의 치료를 감당하였다. 일명 유의(儒醫)라 하는데 퇴계(退溪)의 치병 관련 기록이나 다산(茶山)의 의약 관련 저술 등이 대표적이다. 묵재 또한 그의 행장(行狀)에 보면 어머니 병을 구완하면서 의술 공부를 많이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부인(母夫人)이 항상 질병이 많아 공이 직접 탕제를 다려 올리되 오랠수록 더욱더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의방(醫方)에도 정밀하여 활인(活人)을 많이 하였다.”

묵재일기에 나타나는 사망유형들을 분류하면 대략 20여 가지가 넘는데 그중에서 역질(疫疾)이 가장 많은 빈도로 기록된 사망원인이다. 그다음이 두질(痘疾), 이질, 열(熱), 한병(寒病) 등 비교적 전염성이 강한 유행병 때문에 사망에 이른 것으로 분류된다. 당시에 일반 백성들은 한번 역병에 걸리면 속절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병진년(丙辰年)봄에서 여름 사이에 역(疫)의 기운이 촌마을에 연달아 발생하였는데, 처음에는 가벼운 피부병인 진창(疹瘡)이라더니, 자세히 살펴보니 두역이었다. 먼곳으로부터 차츰 가까워져 아이들 때문에 두려웠다.”

또 1556년 5월 9일 자 일기에 “며칠 안 되어 남리(南里)에서 두역(痘疫)이 발생해 아이가 죽어 어미가 통곡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고 기록하고, 같은 해 5월 19일에는 “죽은 여아의 제삿날인데 동네에 역신(疫神)이 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후한 때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라는 자전에는 역(疫)을 ‘백성이 모두 앓는 것’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역병은 아주 오래전부터 일반 백성 누구나가 집단적으로 앓아왔던, 자연재난의 하나로 여겨왔던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에 ‘통과의례로 앓아야 하는 병’으로 받아들였으니 그 체념상태에서 죽음과 싸워야 하는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1593년 임진왜란 중에 이순신 장군이 조정에 올린 장계에서 “전라도에 역병이 크게 번져 일진(一陣) 중의 군졸이 절반 넘게 전염되어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더욱이 군량이 부족하여 계속 굶던 차에 병에 걸리면 반드시 죽었습니다.” 하였다. 같은 시기 정월 보름에 퇴계의 제자 오운(吳澐)이 쓴 편지에는 “해가 바뀌어 정월이 되었으나 역병이 사방에 창궐하여 유민과 죽은 사람이 길에 가득하니,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다.” 하였다.

역사는 반복하는 것인가. 지금, 나라 안은 물론 온 지구촌에 중국 우한(武漢)발 ‘신종폐렴’이라는 역병의 확산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재로는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국민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국가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사백여 년 전 묵재가 기록한 역병에 대한 두려움이 21세기 의료기술이 최고도로 발달된 현대사회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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