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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객원 논설위원>

필자는 1960년대 초 사회가 혼란하고 가난이 온 나라를 짓누르던 때 시골 거리를 맴돌던 한 소녀를 기억한다.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버텅예’란 별명을 얻은 10대 후반쯤 된 정신박약아였다. 버텅이란 뻐드렁니의 평북 사투리요, 뻐드렁니란 앞으로 삐져나온 이빨이다. ‘버텅예’란 앞니가 삐져나온 못생긴 여자란 뜻일 것이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이 집 저 집 다니며 먹을 것을 얻어다가 버려진 집의 귀퉁이에서 먹고 자던 그녀는 못생긴데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옷이 남루하고 악취까지 풍겼다.

그런데 방학 중에만 내려갔던 그 시골에서 어느 날 불룩하게 솟아있는 ‘버텅예’의 배가 눈에 띠었다. 욕정을 참지 못한 누군가가 그녀를 범하여 임신시켜놓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임신한 그 정신지체 장애인 소녀는 출산하면 어머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아기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이며, 아기의 아버지는 과연 책임을 느낄 것인가…. 당시 학생이었던 나의 뇌리에 박힌 이런저런 생각들이 지금도 떠오른다.

지난달 14일 새벽 수원시의 한 고등학교 화단에서 온몸에 멍이 든 채 죽은 소녀는 거리를 맴돌던 노숙자였다. 경찰 수사 결과 그녀는 ‘2만원을 훔친 도둑’으로 오인돼 어른 노숙자에게 마구 얻어맞아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어린이 또는 10대 노숙자들은 ‘버텅예’와 같은 아픈 사연의 주인공들, 부모가 이혼하여 가정과 사회의 안전망 밖으로 내몰린 소년 소녀들, 부모는 있지만 가난이나 불화로, 아니면 답답해서 거리로 나와 떠도는 소년 소녀들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린 노숙자들을 방치하고 있다. 버려진 아이들을 구걸하게 하여 등치는 어른들도 있다. 어른 노숙자가 어린 여성 노숙자를 성욕발산의 도구로 삼기도 한다. 어떤 소녀 노숙자는 가상공간인 인터넷을 통해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단 한 사람의 희로애락의 기(氣)도 이 이웃과 사회와 우주에 파장을 일으킨다. 거리에서 맴도는 아이들은 버려진 가정, 버려진 사회의 발가벗은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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