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현칼럼] 수업료 못내는 아이들
[안병현칼럼] 수업료 못내는 아이들
  • 경기신문
  • 승인 2008.07.27 18:37
  • 댓글 0
  • 전자신문  22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안병현 논설실장
정확하게 말하면 ‘수업료 못내는 부모들’ 로 제목을 바꾸는게 맞다. 장사가 안돼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부모, 회사가 망해 실직당한 부모, 차 팔고 집기 팔아도 생활이 어려운 부모, 이것 저것 뜻대로 안돼 자포자기하는 부모들이 자녀들 수업료를 제때 주지 못하고 있다. 경제한파의 힘겨운 생활고가 학교생활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수업료를 둘러싸고 학부모와 학교간 다툼도 잦다. 수업료를 거둬 들여야 하는 학교측은 수업료 체납이 늘어나자 담당교사를 채근하게 되고 또 교사는 수업료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교육청은 수업료 징수실적이 우수한 학교에 성과급 지급을 추진했다가 ‘비교육적’ 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슬그머니 철회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지난 19일 “이번에 참으로 어이없는 교육자로부터 전화한통을 받았다”고 시작하는 글이 올라 왔다. 내용은 이랬다. “계좌 잔고를 확인하지 못한 나에게도 책임은 있지만 담임선생이 수업료가 밀렸다고 ‘어머님이 설겆이를 해서라도 갚으라’고 하고 학생이 수업료를 안냈으니 퇴학처리 한다고 하는데 이게 담임선생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수업료 체납이 불경기 시대의 새 사회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교육청이 지난 3월 말 마감한 올 1분기 도내 380개 공·사립 고교의 수업료 미납률이 12%에 달하고 있다. 전체 학생 43만8천여명 중 4만명 가량이 수업료를 내지 못한 셈이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수업료 미납률이 한자리수를 넘지 않았으나 최근 서민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으로 도교육청은 분석하고 있다.

고교생이 한 분기에 학교에 내야 하는 돈은 1급지(도시지역)를 기준으로 수업료 34만2천900원과 학교운영지원비 7만3천860원 등 41만6천760원이다. 1년치로 계산하면 166만7천40원이다. 수업료 체납은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이, 인문계보다는 전문계 고교가 두드러지고 있다.

수업료 징수를 위한 관계기관의 무리수가 도를 넘고 있다. 수업료 체납을 눈뜨고 보지 못하겠다는 듯 경기도교육위원회는 지난 2006년 2월 22일 찬반 논쟁 끝에 ‘경기도 학교 수업료 및 입학금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례안에 ‘학교장은 수업료를 징수기일로부터 2개월 이상 내지 않는 학생에 대해 출석정지 처분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당장 학무모와 교원단체로부터 ‘비교육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교육인적자원부는 같은해 3월 24일 이같은 조례안의 기초가 된 ‘학교 수업료 및 입학금에 관한 규칙’ 제7조 징벌조항을 없애겠다며 각 시·도교육청에도 ‘수업료 미납자 출석정지 조치’ 조항을 포함하는 조례 제정을 보류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이 조례안은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같은 내용의 조례안을 추진했던 서울, 경남, 전북 등 3개 교육청도 꼬리를 내려야 했다.

인천시교육청이 지난 4월 수업료 징수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징수 실적이 상위 10% 이내인 8개교에 모두 4천만원을 성과급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시교육청의 처사는 효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비교육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슬그머니 철회하는 웃지못할 촌근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시대에 뒤떨어진 학칙으로 수업료 체납을 용납치 않거나 황당한 학생 징계를 하고 있는 학교도 있는 것으로 조사돼 학교의 비민주적인 운영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시대착오적인 선도 규정과 학칙들을 연구한 보고서 ‘학생 징계절차의 확립과 청소년 참여 방안’을 지난 4월 펴냈다. 몇몇 학교는 ‘수업료 체납시 출석 정지나 퇴학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학칙으로 갖고 있다고 한다. 시대에 맞지 않는 학교의 월권이다.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해 교사들 눈치를 봐가며 학교에 가야 하는 학생들이나 수업료를 주지 못해 자식 얼굴 제대로 쳐다 보지 못하는 부모들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근교 버까지 당국은 국립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비롯한 모든 교육비를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대신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통행금지령을 내려 학생들이 가정에서 학업에 매진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2세교육에 선진국, 후진국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