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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류관순 누나와 다문화

 

3.1절로 시작되는 3월은 우리나라, 우리민족을 생각하는 그런 계절의 시작입니다.

혹한 추위를 이겨내고 솟아나는 대지의 이름 모를 풀들을 보노라면 숙연한 민족애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3월이 되면 류관순 누나가 떠오릅니다. 지난해 한국 최초로 여성인물을 화폐에 도안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여성 위인들 중에 유독 거론되는 두 명의 위인이 바로 현행 5만원권의 주인공이 된 신사임당과 류관순 누나였습니다. 저는 내심 류관순 누나가 5만원권에 도안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서양에는 잔다르크가 있다면, 동양에는 바로 류관순 누나가 있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나 류관순 누나가 아닌 신사임당이 도안되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이지만 그나마 절반의 변화에나마 자족해 봅니다.

한국의 화폐를 보면 한국사회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현행 화폐는 동전은 1966년에 1,5,10원, 1970년에 100원, 1972년에 50원, 1982년에 500원이 발행되었습니다. 지폐는 1972년에 5천원 권, 1973년에 1만원 권, 500원 권, 1975년에 1천원 권이 발행되었습니다. 지폐의 도안은 500원 권에 충무공 이순신장군, 1천원 권에 퇴계 이황, 5천원 권에 율곡 이이, 1만원 권에 세종대왕(이도,李?)가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李)씨 성을 가진 조선시대 14~15세기의 사람들입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은 쉽게 수긍하지만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선생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이 화폐에 도안된 이유는 1970년대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시 유교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국가의 각오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에 새롭게 도안된 5만원 권에 과거와 똑같은 시대, 똑같은 문화권의 인물이 새겨졌습니다.

5만원 권이 나오기 전에 너무 단순하고 이해하지 못할 한국의 화폐 도안을 풍자해서 두 가지의 가설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모두 이(李)씨 성을 가진 인물이다 보니 500원 동전에 도안된 학의 성(性)이 이(李)씨다. 그러므로 500원 동전의 학의 이름은 이학이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도안된 인물들이 모두 남성들로만 도안되었기에 여성인물은 없다는 비판에 대해 500원에 나온 학이 암컷이다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하튼 화폐를 통해서 보는 한국사회의 모습은 유교문화를 계승하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교문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분명 유교 사상은 한국사회에서 꽃을 피운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임에 이견은 없습니다. 유교의 예의를 기초로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칭호를 얻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의 화폐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모두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류관순 누나가 신 화폐의 도안에서 제외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의문이 남습니다.

그 이유를 굳이 나름대로 해석해 보자면 첫째는 류관순 누나는 기독교이라는 것입니다. 작금에 한국사회의 30%가 바로 기독교인이며, 이승만,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서상 기독교는 민족의 종교가 아닌 외래종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근현대사에 끼친 기독교의 역할(물론 다른 종교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하였습니다.)을 인정하더라도 우리의 정서상 기독교를 민족의 종교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불교나 유교는 민족의 종교로 받아들이지만 기독교까지 한국민족의 종교로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넓게 보자면 고려시대에는 불교, 조선시대에는 유교, 근현대사에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차례로 이주한 종교들입니다.

두 번째는 류관순 누나는 너무 저항적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높으신 분들은 저항적인 사람을 너무나 싫어합니다. 한국사회는 권력과 남자에 순응하는 현모양처를 원하지 온몸으로 저항하다 목숨바쳐 살아가는 여성은 상당히 부담스러워 합니다. 지금도 한국남성과 결혼하는 이주여성은 너그러이 한국사람으로 받아들이지만, 한국여성과 결혼하는 이주남성 가정은 한국여성과 이주남성 모두 색안경을 끼고 꺼림직하게 바라봅니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여성은 한국남성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속에서 남성에 속하지 않고 투쟁적인 여성은 용납하지 못합니다. 만일 류관순 누나가 누군가의 아내였다면 쉽게 5만원 지폐에 도안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류관순 누나가 한국의 화폐속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당당히 서 있을 것을 것입니다. 너무나 민족적이고 한국적인 모습이지만 그 곳에 다문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다문화사회로의 출발은 밖으로부터 온 사람들에 대한 포용이 아니라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서로의 다름이 용납되고 존중되고 배려되는 관용과 소통의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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