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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박병두"손택수 시인과 경찰청 폴알림-e 만남

 

손 시인은 “우리의 관찰·상상력이 사회적 약속처럼 언어라는 제도권 속에 갇혀있다. 상상력의 다른 이름으로 굳어진 질서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 경기경찰청에서는 작가 및 폴오피니언 폴알림-e 워크숍을 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경찰과 작가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 의문을 품는 분도 계실 것이다. 경찰에 몸담으면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 역시 한때는 경찰과 작가가 서로 상반된 것인 듯 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융합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서로 다른 학문 분야와 이업종이 융합해 서로 윈윈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는 경제학과 뇌과학이 융합된 신경경제학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으며, 가전제품과 예술이 만나 멋진 산업디자인을 만들어가고 있다.

필자는 경찰 생활을 하면서 작가로 지내왔기에,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러 사건들을 접하며 지내왔던 경험은 고단하고 슬픈 현실에서 이상을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세상 곳곳에서 불행과 좌절, 고통과 쓰라림을 견뎌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필자는 펜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쓴 글들로 경찰과 시민을 보다 가깝게 이어지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경기경찰은 시민들과 보다 가까운 경찰로 거듭나고자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경기경찰의 작가 인력풀을 구성하고, 폴오피니언, 폴알림e 경찰관을 격려하며 우수활동 노하우 공유 및 담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경찰이 변하고 있으며, 시민이 일상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현장을 중심으로 하는 치안을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날 작가 및 폴오피니언 폴알림-e 워크숍에서는 손택수 시인이 특강 강사로 참석했다. 손 시인은 한국 문단에서 명망이 높은 시인으로 필자가 추천해 특강이 성사되었다. 담양 출신인 손 시인은 경남대를 나와 부산대에서 ‘신경림 시인의 시에 나타난 구술성 연구’로 학위를 받았고,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되어 시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실천문학사 대표를 맡고 있다. 실천문학사는 진정성 있는 문학작품들을 줄곧 펴내고 있는 출판사다.

손 시인은 특강에서 우리의 관찰력과 상상력이 사회적 약속처럼 언어라는 제도권 속에 갇혀 있다고 말하고, 문장의 대가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까마귀 빛깔을 검정색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세상 모든 것은 한 가지색으로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뻐꾸기 울음소리도 가만히 들어보면 천 가지 만 가지 소리로 들린다며, 상상력의 다른 이름으로 굳어진 질서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특강에서 손 시인은 유년을 돌아보면서 초중고 시절에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능력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00미터 달리기도 오래달리기를 뛰듯이 느릿느릿 뛰었다. 그에게 유일하게 잘하는 것 하나가 있다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 것이었다. 고독을 즐기고 고독에서 시심을 찾은 그는 시인을 꿈꾸었는데, 단 한 번도 백일장에서 입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신춘문예도 마흔 번이나 도전한 끝에 당선되었다.

그는 ‘고독은 부정과 긍정, 양면이 있지만 눈부신 외로움, 별의 외로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고독을 이겨내고 대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싹틀 때, 대상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자유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기만성형인 그는 박완서 작가도 사십을 넘어 등단했지만 간절히 매달려 많이 읽고 많이 쓴 결과, 한국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좋은 글은 그러한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것이며,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게 내놓을 수 있을 때 독자로부터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손 시인은 가난했다. 안마시술소에서 구두를 닦으면서도 항상 곁에 책을 두었다. 그러면 몇몇 사람들은 ‘딱새 주제에 무슨 책을 읽느냐!’며 그를 질책했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가난의 상처는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게 한 자양분과 같았다.

손 시인의 특강을 마치면서 필자는 ‘문학은 나와 세상을 치유하는 힘’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았다. 손 시인과의 대화 시간은 짧았지만 그와 함께한 시간은 경찰관들에게는 유익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펜을 드는 작가와 시인의 마음으로 현장 중심 치안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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