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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가로수를 누비는 애환의 노령 운전기사들

 

어제 출근길에 택시를 탔다. 개인택시였다. 그리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운전대 주변을 보다가 놀랐다. 핸들 옆 거치대엔 태블릿PC가 놓여 있었고 내비게이션은 물론 콜을 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비롯 주파수가 잡히는 무전기 등등 복잡한 기기들이 포진하고 있어서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선글라스에 목엔 블루투스 헤드셋이 걸려 있었다. 기기에선 연신 지역명칭이 호출됐다. ‘영통동 3번 출구’ ‘화서시장’ 등등. 그러자 헤드셋 버튼을 누르고 응답한다. ‘손님 태우고 조원동 운동장 앞 가는 중’. 기기 다루기가 어렵지 않느냐고. 지긋한 나이를 감안해서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온 대답은 ‘노 프러블럼’이었다. 오히려 정보통신기술과의 접목이 활발한 영업으로 이어져 즐겁기까지 하다고 했다. 실례지만 올해…, 7학년 5반이란다. 75세란 얘기다.

요즘 영업용 택시를 타면 열에 다섯은 65세 이상 노령 운전자다. 이 같은 현실에 비추어 놀랄 일도 아니지만 어제는 기기 다루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대단하다고 이야기 하자 이왕 돈 벌러 나왔으면 즐겁게 해야지 않느냐며 노령 운전자들의 애창곡이라는 노래 한 곡을 틀어준다. ‘야이야이야아~ 내 나이가 어때서~.’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엊그제 롯데호텔 내 주차돼 있던 외제차 등 고급 차량 5대를 들이받은 70대 모범택시 운전사 얘기로 이어졌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밝은 표정이던 운전기사는 정색을 하며 사회에서 노령 운전기사를 보는 편견이 너무 심하다고 했다. 물론 나이 먹어서 인지능력과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두 명의 노령 운전자가 사고를 냈다고 해서 나이든 기사 전체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 서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늙은이들을 직업전선에 내모는 사회구조가 더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기대수명 100세라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령 운전기사에 대한 논란이 요즘 부쩍 많아졌다. 이 같은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난해 2월 호텔신라에서 83세 운전기사가 몰던 모범택시가 실수로 현관 등을 들이받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더욱 사회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논란의 주제는 물론 안전이다. 영업용의 경우 노령 운전은 자신만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승객 그리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사고를 낸 80대 고령 운전기사는 단칸방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내를 돌보며 어렵게 살아가면서 생계를 위해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알려져 노령 빈곤에 대한 복지 정책의 문제점도 함께 부각됐다.

그렇다고 사고를 예단해 노령자들에게 영업용 택시의 운전대를 잡지 못하게 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현행법상 법인택시는 연령제한이 만 60세인 데 반해 개인택시의 경우 제한이 없어서다. 지난해 개인택시 연령제한을 75세로 낮추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개인의 자유직업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하지만 법규로 운전 연령을 제한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법규 제정 이전에 사회적 문제 해결이 더 시급해서다. 따라서 이 같은 규제는 의미가 없다. 특히 75세 미만 노인들을 비롯 심지어 젊은 사람들도 지각능력과 순발력은 개인별로 차이가 커서 더욱 그렇다.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령 운전은 점점 더 늘고 있다. 최근 들어선 ‘내 나이가 어때서’ 하며 설렁설렁(?) 취미 차원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기사들보다 저소득을 견디지 못해 ‘그나마’ 안정적인 수입을 벌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사람들이 더욱 늘고 있어서다. 일부 전문가들은 노령 택시기사 증가가 고령화 사회의 자연스러운 단면이지만 생계를 위해 노인들이 해야 할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통념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따라서 교통사고 증가 등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체검사 강화, 젊은 운전자 유인책 등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법으로 고령 운전자의 운전을 금지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나 하는 일이지 민주주의 국가에선 불가능한 일이어서 특히 그러하다. 대신 고령 운전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 운전을 서서히 포기하는 방식으로 고령 운전자들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 조언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복지를 신장시켜 노인이 대우받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못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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