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아버지와 어머니

 

언제 부터인지 모르지만 요즘 들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씨름은 우리 집 식탁에서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식탁에서의 대화는 이제 뻔한 레퍼토리로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이 되는 것을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약간의 서글픈 감정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도 어머니의 마음을 모를 수가 있을까.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아버지는 아들인 내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분이다. 팔십 중반을 넘어 구십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세 살 아래의 어머니는 오늘도 나름의 사랑 티내기를 하신다.

주방에서 아내의 음성이 들려온다. “여보! 아버님 어머님 식사하시라 하세요.”

“알았어” 대답을 하고 방에 계신 아버님과 거실 화장실에서 뭔가 열심히 빨고 계신 어머니에게 “진지 잡수세요” 한다. “알았다” 대답을 하시고 나면 잠시 후 우리 네 식구는 동그란 식탁에 둘러앉는다. 오늘의 메뉴는 어제부터 아버지가 잡수시고 싶다 하신 감자탕이다. 식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을 거신다. “어이 이거 줘? 등뼈에 고기가 많은데 맛있네” 하시면서 힐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버지다. 그리고 바로 어머니의 말씀이 이어진다. “싫어요, 당신이나 많이 드세요. 나도 많이 있어요. 귀할 때 줘야지 나도 많은데 뭘 줘요? 당신이나 많이 드세요” 하신다. 그러고 나면 귀가 어두워 잘 못 듣는다고 하시는 우리 아버님도 어떻게 잘 듣는지 바로 쏘아 대신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준다면 고맙게 알고 먹으면 되지 웬 말이 그렇게 많아?”.

이렇게 시작이 되고 나면 이야기는 자꾸 과거로 올라간다. 과거로 올라가면 갈수록 불리해지는 우리 아버지다. 가장이라는 위치에서 나름 열심히 세상을 살아오신 아버지셨지만 가정과 가족 특히나 신랑을 위해서라면 온몸으로 인내하고 헌신하신 어머니 앞에서는 말문이 막혀버릴 수밖에 없다.

6·25 종전 후 50년대 초중반 다른 건 볼 거 없다는 최고의 신랑감이었던 제대군인과 지역 명문가의 집안이었으나 부모님을 일찍 여의어 할머니 손에서 자란 처녀의 인연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여섯 묶음이나 해놓고도 한참이니 그간의 살아오신 이야깃거리가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재미있는 현상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보따리에서 언제 어느 때 어느 보따리를 풀어도 결국은 말문이 막히는 것은 아버지이며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체념이 섞인 말로 끝맺음이 된다.

오늘도 예외 없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씨름은 벌어지고 자칭 유식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는 밥상 위를 오가며 한 폭의 복잡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목도한다. 아직도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는 아버지가 무식하다고 여기는 어머니의 지혜로움에 당신의 모든 것이 서서히 함몰되는 모습을. 그리고 아버지 나름의 사랑 표현이 서툴지만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갈구하던 사랑을 이제서라도 받아서 행복하다는 어머니의 표정과 아직도 아버지라면 온갖 정성으로 변함없이 헌신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짠하기도 하고 부부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밥상머리에서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는 당사자인 아버지와 어머니보다도 자식인 내게 큰 축복이고 행복인 것을 이 글을 쓰면서 더욱 느낀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