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이정구칼럼]파면(罷免)과 파문(破門)

 

파면이란 단어는 잘못이 있는 사람을 직업이나 맡은 일에서 쫓아내어 신분을 박탈하는 명사로 사용한다. 파면을 하려면 대상자에게 무언가 중대한 잘못이 있어야 한다. 잘못이란 영역 은 퍽 추상적인 것이지만 잘못의 유무는 그가 맡은 직책, 직위, 직무에서 그릇된 행위와 그 결과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잘못의 기준은 그 직무와 관련된 규정에 따르게 된다. 규정에 없을 경우에는 사회 관습, 공공성, 도덕성, 여론 등의 잣대로 측정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작년에 구성원 한 명이 잘못을 하여 절차를 거쳐 파면하고자 했으나 그가 먼저 사표를 쓰고 나갔다. 다행히 그 여파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는 구성원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갔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생활하다 보면 아버지로서, 혹은 직위를 갖고 직무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그 직권을 남용하여 폭력, 성희롱, 인사, 배임, 횡령, 금품수수, 기타 압력 등을 행사할 수 있는 유혹과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수도원에서조차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한다. 어떤 사람은 10계명을 못 지킬지라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자신만의 ‘11계명’을 만들고 이를 굳건한 믿음으로 지키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해 간다. 그러나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권력을 행사하고 사익을 취할 때의 희열은 도박에서처럼 아슬아슬함과 동시에 돈을 딴 것처럼 분명히 클 것이다. 또 뒤처리까지 완전무결하게 마무리했다고 안심하겠지만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그저 나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선조들께서 당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지혜의 격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갔다. 국민을 화합할 최소한의 공공심을 그에게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자괴하기보다는 끝까지 그 사람답게 국민에게 인사말을 대독하는 것을 보며 더 이상 놀라울 것도 없었다. 그의 사저 앞에는 태극기와 함께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기도문의 현수막을 들고 애처롭게 서 있는 중년 여성도 보였다. 이 여성이 믿는 하나님은 분명 기독교의 하나님이 분명한데 어쩌면 이런 믿음을 확고하게 지닐 수 있는 것인지 새삼 놀라울 뿐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일찍이 진보 보수로 교파가 분열된 역사를 갖고 있다. 아무리 진보 보수라고 할지라도 신앙 안에는 이성도 들어 있는 것이다. 이성이란 쉽게 말하면 계산한다는 뜻이다. 도대체 어떤 셈법으로 계산하고 따져서 저런 행동을 하게 되는 답이 나왔는지 아리송하다.

1517년 10월 31일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날이다. 한국 개신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올해 다채로운 행사를 이미 펼치고 있다. 가장 척결해야 할 과제가 목회자 세습 문제라고 입을 모으고 비판하지만 몇 대형교회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종교개혁 행사에 초청되고 재정 후원도 한다. 퍽 아이러니 하지만 이것이 한국 개신교회의 현실이다. 그러니 무슨 개혁이 되겠는가 싶다. 당사자는 세습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소속 구성원들이 모두 찬성하니 반대하거나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회적 공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극 보수 혹은 극 진보단체들의 성향 같이 가족적이며 야만주의 집단 같은 성향의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

태극기는 바람에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여야 하는데 부끄럽게 펄럭이고 말았다. 태극기는 우리나라 깃발이어야 하는데 그들만의 깃발이 되고 말았다. 태극기 형태의 무구한 음양오행 합일과 합치의 의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남과 북, 진보와 보수의 이원론의 의미로 추락하고 말았다.

대통령의 파면 유무에 따라서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과 이성은 이 파면에 환호를 했다. 파면 당했다고 해서 당장 푸른 하늘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은 것이다. 과거 중세교회에는 잘못한 교인에게 교회출석을 막는 파문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파문해야 할 사람이 정작 국민들로부터 파문당할 리스트에 오른 것이 오늘 개신교회의 현실인 것은 대한민국 정치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렇게 봄은 왔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