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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한글을 정말 사랑한다면

 

한글날은 우리에게 기나긴 추석연휴를 하루 더 늘려 주었다. 세종대왕께 다시 한 번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한글 창제를 기념하려는 노력은 일제 강점기에 시작되었다. 1926년 조선어학회에서 ‘가갸날’을 정했고, 1928년 ‘한글날’로 바꾸었다. 당시에는 음력 9월 29일이었으나, 1945년 훈민정음 해례본에 근거하여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로 정해졌다. 2005년에 국경일로, 2012년에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한글을 세종대왕이 발명했고, 전적으로 독창적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 25년(1443)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지으셨다”고 하였다. 또 세종 28년(1446)에 ‘훈민정음’이 반포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세상 모든 발명품이 그렇듯이 이전에 전혀 없던 것이 갑자기 탄생할 수는 없다. 한글창제 과정을 연구한 정광의 저서 ‘한글의 발명’에 따르면 인도의 음성학과 팔만대장경을 공부하는 스님들의 조언,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받았고, 세종대왕의 가족들과 성삼문, 신숙주 등의 신진학자들의 연구가 모여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세종대왕 혼자 발명했다는 것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다. 몽골의 파스파 문자는 1269년 반포되어 한글보다 앞선다. 이 또한 티베트 문자를 네모지게 개량한 표음문자이며, 언뜻 보아도 한글과 동일한 글자가 여럿 눈에 뜨인다.

한글은 다른 문화의 영향과 많은 사람들 노력의 결실

세종대왕이 혼자 발명한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의 글자나 음성학을 참조했다고 해서 한글의 독창성이 평가절하 되지 않는다. 한글은 천지인(天地人)과 발음기관을 본 뜬 것으로 음성학에 따른 매우 과학적인 글자다. 더구나 중국어와 한자발음의 차이를 극복하고 문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하여 짧은 기간에 만든 글이라는 점에서 자랑스럽다. 인류사에 쓰인 400여 종의 문자 중 현재 쓰이고 있는 것은 30여 종에 불과한데, 한글은 지금 쓰이는 살아있는 문자다. 훈민정음의 28자모 중에서 4개는 현재 쓰이지 않고 있다. 우리말 속에서 그 네 가지 음이 없어진 까닭이다.

그러나 외래어로 인한 새로운 발음 표기가 필요하지만 한글 표기 방법이 아직 개발되거나 보급되지 않고 있다. 예컨대 ‘패션의 도시 파리’라고 하면 모두 ‘ㅍ’으로만 표기하므로 영어 F(fashion)와 P(Paris)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 경우 F를 ‘ㅍㅎ’으로 표기하고 P는 그대로 ‘ㅍ’으로 표기하면 어떨까? 전통에 얽매여 한글의 확장을 우리가 막고 있는 사례일 수 있다. 맹목적인 한글사랑은 한글의 발전에 장애물이다.

한글과 더불어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또 하나의 유산이 금속활자이다. 1234년 상정고금예문이 기록상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이며, 현존하는 것으로 1377년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이 있다. 이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사용하는 인쇄술을 고안했다는 1434년이나 구텐베르크 성서를 찍어낸 1450년보다 앞선다. 하지만 서양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쑥스러운 것은 서양의 금속활자는 우리가 발명해서 전해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맹목적 찬양보다 개량과 융합을 통한 발전이 진정한 사랑

한글 표기법 중 띄어쓰기는 개화기 선교사들을 통한 영어의 영향이다. 중국어와 일본어가 띄어쓰기를 안 하는 것에 비하여 얼마나 편리한가. 전통은 계승되면서 동시에 창조되는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면 그 전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 전통문화 공연에 빠지지 않는 부채춤과 사물놀이를 보자. 부채춤은 한국 최초의 무용가인 최승희와 그 수제자인 김백봉이 무당이 들고 추던 부채에서 힌트를 얻어 시작한 것이다.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50년대에 와서다. 사물놀이의 경우도 본래 풍물놀이 또는 농악에서 사물(꽹과리, 징, 장구, 북)만을 뽑아 연주하는 것으로, 1978년 김덕수의 사물놀이패에서 시작되었다. 전통의 고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개량하고 융합하여 보급함으로써 인류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현재 한글을 쓰는 나라와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 진정 한글을 사랑한다면 한글창제에 대한 맹목적 찬양이 아니라 좀 더 정밀한 연구와 현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말’과 ‘한글’을 구분 못하는 기사가 한글날에도 많이 올라와 있다. 한글의 세계화는 아직 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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