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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어머니, 먼저 타세요

 

마지막 남겨진 달력의 날짜가 하루하루 지워지고 있다. 송년회를 비롯한 각종 모임들로 거리가 북적이고 예전 같진 않지만 크리스마스트리가 가는 한해를 곱게 장식하고 있다. 역사나 상점 등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에 형형색색의 불빛을 밝힌 것을 보면 살짝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거리를 쏘다니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한다.

메모장을 보면 이런저런 약속으로 빼곡하다. 동인회, 친목회, 기념회, 발표회 등 뭐가 그리 많은지 약속 잡는 것이 이젠 부담스러울 정도다. 한 해 무사히 살았으니 가는 해 잘 보내고 오는 해 희망차게 맞이하기 위함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더 늙기 전에 얼굴 한번이라도 더 보고 살자고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연락이 닿는 친구들이 모이다보니 얼추 스무 명 가까이 모였다. 식사를 하고 소주도 한 잔 했다. 그래도 헤어지기가 아쉬워 노래방에서 노래 몇 곡씩 부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래라면 겁을 먹던 친구가 노래교실에서 배웠다며 음정 박자 정확하게 소화해내며 노래를 잘 하기도 하고 사교댄스를 배운 친구가 앞장서 분위기를 이끌고 가는 바람에 흥에 취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자주 만나자는 당부를 서로하고 헤어져 마지막 전철에서 내리니 택시가 없다. 우리 집 방향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도 이미 출발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은 줄을 길게 섰는데 어쩌다 한 대씩 들어오는 택시로는 한참을 기다려야 할 듯하다. 호출택시도 응답이 없다. 영하의 추위에 몸은 꽁꽁 얼어가고 취기가 가시면서 한기가 몰려왔다. 얼마를 기다린 후 앞의 청년 다음 내 차례다.

기다리던 택시가 왔다. 스무 살 갓 넘은 듯한 청년이 승차를 양보한다. 추우신데 어머니 먼저 타라고 한다. 극구 사양을 하니 뒤로 슬그머니 물러선다. 젊은이도 추울텐데 먼저 타고 가라고 했지만 이내 양보한다.

멋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줄지어 선 사람들도 있고 택시기사의 성화도 있어 못이기는 척 탑승을 했다. 얼었던 마음의 확 풀리는 듯 기분이 좋았다. 택시야 다음이 내 차례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오겠지만 주위에 이런 젊은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버스나 전철에서 어르신이나 노약자 혹은 아기가 타면 대부분 자리를 양보해주지만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고 모르는 척 하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 앉아있는 것이 얼마나 가시방석일까 하는 생각도 들곤 했는데 이렇게 추운 날 그리고 밤늦은 시간에 자신에게 온 기회를 양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칭찬해주고 싶은 젊은이다. 내게 승차를 양보해 준 감사함도 크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 반듯하게 자란 누군가의 자식이고 이 나라의 기둥이다. 누군가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는 일이 말과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열차가 달려오는 철로로 뛰어들기도 하고 어렵게 모은 돈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선뜻 기부하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선 하기 힘든 결정이다.

순간의 판단이 아니라 의식이 바로서고 정신이 반듯하기 때문에 행 할 수 있는 일이다. 연말이면 어려운 이웃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지만 구세군 종소리를 찾아가 작은 정성을 넣는 고사리 손들이 이 사회를 밝게 이끌어가는 주역이 될 것이다. 실천하는 친절과 배려가 살맛나는 사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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