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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언제 어디서든 주체적 삶을 꿈꾸며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다. 당나라 때 임제선사의 어록에 담긴 말이다. 매순간 주어진 공간과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능동적이고 주체적 삶을 살아야 본인이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현대사회가 점점 구조화되고 세분화 되어 가면서 나타나는 요즘 세태를 보자면, 오히려 주인의식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자기희생과 자기헌신을 강요하는 고지식한 훈계어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급변하는 사회구조의 흐름과 왜곡된 조직문화가 만들어낸 폐단이자 병폐의 한 단면인 것이다. 사회란 저마다 자신에게 걸맞게 처한 상황에서 본분과 역할을 진솔하게 다하면 되는 것이다.

꿀벌들의 세계에는 그들만의 일정한 규범이 있어서 각자의 위치에서 이를 지키며 왕국을 건설할 뿐만 아니라 이를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한다고 한다. 여왕벌은 평생 동안 적게는 50만 개에서 많게는 150만 개에 달하는 알을 3천여 개씩 매일 생산한다. 이후 육아를 담당한 벌들은 이들을 15일간 먹이고 키움으로써 일벌로 성장시키고, 이렇게 태어난 일벌들은 처음에는 집짓기와 청소, 육아를 담당하며 한 달여가 지나면 꿀을 따는 일을 하고, 그렇게 1주에서 2주간 평생을 고된 꿀 따기를 끝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꿀벌들의 조직에 대한 자기희생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데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작은 생명체들은 종족에게 누(累)가 되지 않도록 집으로부터 가장 멀리 날아가 그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이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각각의 역할분담으로 식물들은 수정을 통한 생명을 얻게 되고 그 생명력은 온갖 과일과 곡식의 생산으로 연결되어진다. 이 작은 생명체들의 약속된 매뉴얼은 그들이 속한 조직의 생명력을 영속시킬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며 그 뜻을 구하는 꿀벌들의 애잔함이 ‘수처작주 입처개진’을 반복해서 떠오르게 한다. 이것이 자연이고 그 큰 이치인 것이다.

그러나 그중 누군가가 꿀을 따야하는 소임을 져버리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역할에 반하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 이들의 약속과 규범은 인간세상에서 상상하는 그 이상을 초월해서 단호하고 엄중하게 집행한다. 주어진 역할과 규범에서의 일탈은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고 이것이 반복됐을 때 야기되어질 공동체의 붕괴와 파멸로 치달을 파장을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판단하기 때문인 것이다. 일벌백계(一罰百戒)를 통해 조직의 규율과 규범을 다져가는 꿀벌들의 사회공동체 문화는 그런 의미에서 인간사회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하겠다. 공동체란 이렇듯 누군가의 간섭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성원 개개간의 긴밀한 약속과 믿음이 전제되고 지켜짐으로써 영속되어진다. 우리가 자신의 삶에 주인공이 되려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처럼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강제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그렇게 주체적 삶을 충실히 살면 그 뿐인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상생인 것이며, 나와 사회를 발전시켜나가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오늘도 산과 들에서는 수많은 꽃들이 피고진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한 꿀벌들의 비행 또한 끊임없이 오고간다. 붕붕 거리는 그들의 날개 짓을 보고 있자면, ‘수처작주 입처개진’을 소리 내어 암송하는 임제의 제자인 듯 착각 속에 빠져들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수고롭게 저 넓은 들판을 종횡무진 매일을 마다않고 힘들게 날아다닐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 경건함에 나는 서슴없이 고개 숙여 작은 생명체들에게 경의를 보내는 바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준 큰 선물에 대한 작은 보상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인간들의 집단문화의 표본을 저 꿀벌들의 공동체 문화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이런 나의 생각이 혼자만의 독백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꿀벌들의 중력을 거스르는 힘찬 비상을 마음으로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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