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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일상에서 오는 소소한 기쁨

 

 

 

날마다 푸른 산 능선의 이마를 마주한다. 바라산과 백운산이 멀리 보인다. 왼쪽엔 모락산이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엔 겨울날 흰 눈 쌓인 저 앞산을 생각한다. 지난겨울 아침 창밖은 간밤에 내려 쌓인 설산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가까이서 설봉을 바라보는 일도 참 신비롭고 기쁜 일이다.

요즘 새벽에는 백운산 아래 백운사까지 걷는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온갖 풍경들은 날마다 다른 모습이다. 나무와 풀과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참 신선한 기쁨이고 고마운 일이다. 백운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 따라 산책길이 계속 이어져 있다. 산 위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에 청둥오리 한 쌍이 노닐고, 금계국이 들녘에 지천으로 피어 손을 흔든다. 숲길엔 산딸기가 익자마자 누군가 다 따먹었는지 빈 가지마저 정답다.

숲속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온다. 뻐꾸기가 울면 꿩도 울고 꾀꼬리도 맑은 울음을 자랑한다. 이곳에는 물까치 떼가 서식하며 한꺼번에 모여 날아다닌다. 나무를 쪼는 오색딱따구리도 있다. 그 깃털의 화려한 색깔을 한없이 바라보게 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오색딱따구리를 만나는 날은 온종일 기쁜 날이다.

어느 날은 온몸이 녹청색 광택이 나는 물총새를 발견한 적이 있다. 사진에서만 보던 물총새는 실제로는 아주 작은 새이다. 신기해서 바라보려는 데 금방 날아간다. 그때부터 오늘은 혹시 물총새를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둘러보게 된다. 그런 설렘이 참 기쁘고 즐겁다.

산책길 주변에는 농사 짓는 주민들이 상추, 아욱, 강낭콩, 오이, 애호박, 가지, 등을 푸짐하게 담아놓고 팔기도 한다. 아침 산책길에 지나가다 사 들고 가는 모습도 즐거워 보인다. 나도 다음날 돈을 넣고 와서 푸성귀를 샀다. 꾹꾹 눌러 담아주는 넉넉한 인심이 참 푸근하다. 밭에서 바로 따주어 그 싱싱한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맙고 기쁜 일인가.

어느 날 아침나절이었다. 방에서 거실로 나오는데 창문에 황조롱이가 붙어있었다. 그 특유의 크고 똥그란 눈으로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놀라서 다가가니 황조롱이도 같이 놀라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참 신기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왔나 싶었다. 혹시 오늘은 황조롱이가 날아오지 않을까 기다리게 된다. 기다리는 설렘도 한편으론 기쁨이다.

집안에서 비록 화분이지만 꽃을 피우는 것도 대견하고 신기한 일이다.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천냥금이 흰 꽃을 피웠다. 꽃기린도 빨간 꽃을 피우고, 이름 모르는 다육 식물도 분홍 꽃을 피웠다. 하루는 더덕 껍질을 벗겨 반찬을 만들다가 한 뿌리를 종이컵에 물 담아 창가에 놓았다. 더덕의 파릇한 넝쿨을 보고 싶었다. 며칠이 지나니 정말 뾰족한 새싹이 돋아났다. 여러 날이 지나고 넝쿨이 벋어 올랐다. 관심 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무슨 복주머니 같은 것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 뭔가 살펴보니 더덕 꽃봉오리다. 하루 만에 그 꽃봉오리가 피었다. 또 꽃봉오리가 세송이나 벙근다. 꼭 초롱꽃처럼 예쁘다, 연한 녹색에 안쪽은 자줏빛이 돌고 갈색 반점이 있는 꽃이다. 작은 종이컵에서 뿌리를 내리고 넝쿨을 올리고 꽃을 피워 낸 것이 참 대견하고 기쁜 일이다.

가까이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놀라운 생명의 신비이다. 생각하지 못했던 향기로운 우주의 문이 열린 것이다. 자연은 주변 상황이 안 좋을 때 더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 올해는 가뭄이 심했다. 장마철인데도 비가 내리지 않는 마른장마라고 한다. 그런데도 능소화나 배롱나무꽃은 색깔이 더 선명하고 진했다. 개체보존을 위해서다.

자연이 내려준 한 송이 꽃이나 맑은 물, 햇빛과 시원한 바람, 우주에 살아 숨 쉬는 기운을 받을 수 있음이 그저 고맙고 기쁜 일이다. 행복은 결코 큰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에 있다.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행복감이 고맙고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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