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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 장안문의 여장(女墻)

 

 

 

성벽은 적군의 진격을 막는 역할을 하지만, 성벽 위의 아군은 적에게 쉽게 노출되어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성벽 위에 다시 낮은 담을 쌓아 아군의 노출을 줄이고 공격하기 위한 장치를 만드는데 이것이 여장이다. 일반 성곽시설에는 내부 여장을 설치하지 않으나 장안문 누각(樓閣)인 장군지휘소 같은 중요한 특수시설에는 성곽 내부에도 별도의 여장을 설치한다.

조선 전기(1451년) 지방 읍성(邑城)의 여장은 높이가 2치(60㎝)와 3치(90㎝)가 주류를 이루고 1치(30㎝)의 낮은 여장도 보인다. 아마 이전 시기에는 높이가 더 낮고 여장이 없는 성곽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임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여장의 중요성이 대두됐지만, 중국의 견제와 경제적 이유로 성곽 자체를 축조하지 못하다가 수원화성이 건설되면서 비로소 여장은 높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다.

수원화성에서 여장의 종류를 살펴보면 타구(타와 타 사이의 구멍)가 없는 평여장(화성성역의궤 용어)과 타구가 있는 타구여장으로 나눌 수 있다.

평여장에는 화서문의 서옹성 외여장처럼 총안이 있는 것도 있으나 마치 담장같이 총안 없는 여장도 있다. 총안이 없는 여장으로는 서옹성의 내여장과 사대문 육축(陸築)의 측면과 내여장 등으로 공격용이라기보다는 방어 및 낙하 방지 또는 위계를 나타내는 용도이다.

타구여장은 첩(堞, 타)의 형태가 평평한 평타구 여장과 특수형 여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수형에서는 첫째, 철여장(凸女墻)은 첩에 하나의 총안만 있고 타구가 두 번 접힌 형태로 남·북옹성의 외여장이 이에 속한다. 둘째, 원여장(圓女墻)은 반원 형태로 동·북암문과 남수문에 있다. 셋째, 요철(凹凸)여장은 첩에 원총안 하나만 두어 여장 길이가 짧으며 수원화성에서 가장 먼저 완성된 시설인 남암문에 있다. 그 외 동북노대에는 원여장을 변형해 방형에 가까운 여장 형태도 보인다.

수원화성 여장의 타구에는 남한산성에서도 보이는 현안(懸眼, 성벽 하부의 적을 공격하는 총안)의 일종인 통천미석(通穿眉石)이 있다. 통천미석은 수원화성 전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장안문 인근 성벽 일부에만 남아있다.

수원화성 여장 규격은 의궤에 의하면 높이 5척(약 1.5m)이고 두께는 3.5척(약 1.05m)이며 길이는 20자(약 6m)이다. 그러나 여장이 성곽시설이나 경사지와 접하면 기준 길이인 20자를 지키지 못했다.

장안문 여장 즉, 육축 위 문루를 감싸고 있는 사면의 여장은 지휘소의 보호와 공격을 원활히 하기 위해 다른 곳의 여장과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외여장은 공격을 위해 총안이 설치되어 있지만, 내여장과 측면여장에는 총안이 없다. 그러나 측면여장은 적군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내·외여장 보다 높다.

장안문은 한국전쟁으로 크게 파손되었고 이후 관리가 되지 않아 완전히 소실되었다. 이곳의 여장도 장안문과 운명을 같이하였고, 1970년대 장안문 복원공사 때 함께 복원되었다. 현재 복원된 여장은 원형과 다른 점이 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외여장은 의궤에 의하면 높이가 4.3척(1.32m)이고 타구 10개, 첩은 11개이고 총안은 각 첩당 1개 총안을 두며 중앙 첩에는 2개를 두어 총 12개가 된다고 되어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사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타구가 8개이고 첩은 9개이며 총안은 7개로 타구는 2개가 적고 총안은 5개가 적게 복원되었다. 둘째, 내여장의 높이는 의궤에 의하면 외여장과 같은 4.3척(1.32m)이다. 보통 사람의 평균 키를 160~170cm로 생각했을 때 이 크기면 충분히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높이다. 문루는 장군지휘소로서 성곽 내부 군사들을 모아 사열하고 명령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위치이다. 그러나 지금은 장군과 군사들이 소통할 수 없을 정도로 내여장이 높게 복원되어 있다.

장안문의 여장을 해체·보수할 기회가 생긴다면 연구와 고증을 통해 원모습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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