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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놀면 뭐 하니

 

 

 

 

 

최근 ‘놀면 뭐 하니’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칼럼니스트는 이 프로그램의 성공 이유로 담당 PD의 유연성을 꼽았는데, ‘유산슬’이라는 캐릭터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이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계획을 급하게 수정했다는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이나 미술 작업이나 계획대로 되기보다 우연한 계기로 급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가 보다.

사실 ‘놀면 뭐 하니’라는 질문은 예술가들에게는 뼈아픈 질문이다. 예술가를 둘러싼 사회와 제도는 예술가를 향하여 늘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놀면서 우연히 탄생한 뛰어난 창작물들이 역사에 그리 많았는데도 말이다. 에디슨의 그 유명한 명언,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실제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1%의 영감이 아니면 그러한 성과를 낼 수 없었다’는 자기자랑이었음을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겠지.

물론 ‘놀면 뭐 하니’ 제작팀이 예술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프로그램의 제목을 그렇게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놀기 좋아하는 허다한 사람들을 몰아세우려는 의도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출연자들이 낄낄대며 정말 신나게 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정의 형식과 계획을 따르기보다는 ‘즐기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은연중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프로그램의 이름은 이런 식으로 지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거봐, 노니까 잘 되잖아’, ‘그냥 놀게 놔둬’

지난 칼럼에서 뒤샹이 체스 경기에 몰두했었던 이야기를 했었다. 뒤샹이 얼마나 체스에 몰두했었는지 전 세계 아마추어 경기를 쫓아다니느라 한동안 작업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미술계에서는 그가 아예 화가라는 직업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어떤 맥락에서 그 소문은 맞는 말이었다. 그 무렵 뒤샹은 회화라는 양식의 미술 행위를 아예 그만두었으니까. 그는 낡고 진부한 회화 따위는 그만두고 좀 더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체스 경기와 카지노 게임에 몰두했고 ‘에로스 셀라비’라는 허위 여성 인물 행세를 하고 다녔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를 게으르고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그의 엉뚱한 일상은 모두 기록이 되어 우리는 그것을 ‘예술 행위’였다고 부른다.

뒤샹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은 그가 어떠한 실험에 굉장히 열중해 있었다는 것이다. 수없는 시도와 통계가 ‘우연’이라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는지 그는 체스판과 도박판 위에서 확인해보고 있었다. 한편 그의 무의식이 사람들이 흔히 ‘미술’이라 부르는 형식과 관념을 그의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우기 위해 그로 하여금 놀이에 몰두하게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업도 알고 보면 놀이인 것들이 많다. 작품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작품을 바라봐봤자 그것은 헛수고가 된다. 차라리 황당하고 재밌는 놀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바라보는 게 낫다. 새로운 스마트폰 신기술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듯, 그 역시 신기술과 매체를 좋아하고 그것에 열광했던 젊은이였다. 다수의 미디어 작품들은 언어를 비껴가거나 언어를 비웃는다. 그러니 그것을 보고 어떠한 말로써 규정을 하려는 시도는 애당초 맞지가 않다. 차라리 화면의 움직임과 소리를 따라 넋을 놓고 있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미디어 작업뿐만 아니라 작가들의 작업이라는 게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우연과 놀이의 산물이 것들이 많다. 하지만 예술가들을 지원한답시고 사회가 고안해낸 제도들을 살펴보자. 계획을 요구하고 그것이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를 측정한다. 지역과 사회를 위한 일이라며 구체적인 미션을 주고 예술가에게 그것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최근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모양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김순기 : 게으른 구름>은 작가의 불성실과 나태가 나름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순기는 프랑스 니스의 한적한 작업실에서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고 작업한다. 그의 말장난 같은 일기와 일상은 예술가가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얻는지 보여준다. 국립 미술관에서 시도한 ‘작가’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정책으로 실현이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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