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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겨울을 앞두고

 

 

 

 

 

겨울 문턱은 삭막하다. 겨울엔 모든 것들이 동면에 들어간다. 나무는 가지를 벗고 맨몸으로 칼바람을 맞이할 태세를 갖춘다.

어찌 나무뿐이랴. 어린 시절 가난한 내 이웃들도 겨울 문턱엔 저마다 허둥거렸다. 겨울은 두려웠고 겨울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행여 먹을거리가 모자라지 많을까. 행여 추위에 떨 내 새끼들에게 무엇을 입힐까? 사람들은 허름한 장롱문을 열고 겨울 준비를 서둘렀다. 이미 바람결이 선뜻해진 겨울 문턱에서 너나없이 들판에 나서 한 톨이라도 더 거두기 위해 가을 추수에 땀 흘렸다.

어린 나는 그런 겨울을 기다렸다. 겨울에는 눈이 오기 때문이다. 얼음 위에서 뒹굴고 놀기 좋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내 첫눈이 오기를 기다렸다. 삭막한 겨울 아침 집 뒤란의 대숲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와 참새 소리도 기다려졌다. 그러나 나에게 겨울은 춥고 배고팠다. 그런데도 나의 겨울은 이상하게 설렘을 안겨주었다. 나에게 겨울은 기다림의 계절이었다. 추위 속에서도 얼음이 풀리고 봄이 온다는 희망의 계절이었다. 겨울이 있기에 봄이 오기 마련이니까….

우리의 생인들 무엇이 다를까? 나의 어린 시절은 차가운 빙점이었다. 춘궁기가 있던 내가 자란 합천 골짝은 겨울이 너무나 가혹하였다. 먹을 것도 모자랐고 입을 것도 변변찮아 늘 양지쪽을 찾아다녔다. 눈 오는 날이면 창호지로 스며드는 찬바람 속에 몸을 떨면서 하늘 가득 내리는 눈발을 지켜보았다.

낮에는 가끔 절에서 내려온 탁발승들이 목탁을 두드리며 한 주먹의 동냥 쌀을 얻어가기도 하던 그 겨울이…. 진정 내 인생의 혹독한 겨울이었다.

나는 용케 그 겨울을 이기고 지금 살고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의 겨울은 나에게 더더욱 서러웠다. 땔감이 모자라던 그 시절 골목길엔 집집마다 매운 연탄가스 냄새가 가득하였다. 차가운 바람 속에 몸을 떨면서 한밤에도 몇 번이나 연탄불을 죽이지 않기 위해 밤잠을 설쳤다. 변변한 돈조차 갖지 못한 가난한 나는 늘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월급이라도 타는 날이면 골목 입구 군고구마 장사를 찾아가는 일이 그나마 호사였다. 차가운 방바닥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던 그 군고구마 맛이라니…. 내 청춘의 겨울은 그렇게 지나갔다.

세월이 흘러 그 참혹했던 내 인생의 겨울도 지나갔다.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호사스런 방안에서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겨울을 보낸다. 먹을 것이 없어 밥동냥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없어졌다. 옷가지가 없어 호롱불 아래서 헌 옷을 기워 입거나 구멍 난 양말을 전구에 끼워 바느질을 하는 사람도 없다. 식품은 물론 모든 필요한 생필품을 집안에 앉아서 버튼 하나면 해결되는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다.

서울은 늘 넘치고 호사롭다. 그러나 넘치면서도 모자라는 것이 있다. 겨울 문턱처럼 벌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어찌하랴. 또 절절한 외로움에 젖어 사는 그들을 어찌하랴? 버림받은 아이들과 홀로 사는 독거노인들, 지병을 안고 죽지 못해 연명하는 사람들, 늘 무엇인가 미진함을 안고 밤거리에서 술에 취해 떠도는 사람들, 그들 속에 드리워진 도시의 그늘 속에서도 나는 늘 겨울 문턱을 느낀다.

가난에 절고 외로움에 젖은 많은 시민들이 겨울 앞에서 입을 악다물고 또 한 번 바람 속의 전투를 벌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득하고 적막한 다가올 내 인생의 겨울은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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