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범의 미디어 비평] 정치발전 가로막는 섣부른 균형보도  

2022.09.26 06:00:00 13면


영국·미국·캐나다 3국을 순방한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국민의 자긍심을 심기보다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8일부터 24일까지 순방일정엔 여왕 장례식 참석, 유엔총회 기조연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및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런던에선 장례식 전날 예정됐던 참배일정이 현지교통 사정으로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1분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게 치밀히 짜여지는 대통령의 외교행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국민을 당혹게 했다. 뉴욕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동안 환담하고, 기시다 일본 총리와의 30분 간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대부분 언론이 저자세 외교라고 비판했다. 일본은 정상회담이 아닌 간담이라고 두 정상간 만남의 격을 낮췄다. 순방 성과를 국민 앞에 내놓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실제로 이번 순방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기억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21일 뉴욕에서 있었던 ‘글로벌 펀드’ 행사장을 나서며 한 대통령의 발언으로 극에 달했다. “국회 이 xx들 승인 안해주면···바이든 쪽팔려서 어떡하나”. 이 발언이 22일부터 국내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프랑스의 AFP를 필두로 미국의 CNN, 영국의 가디언 등 세계 유력언론들까지 앞다퉈 보도했다. 심상치 않은 여론에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해명에 나섰다. 해당 발언이 나온지 15시간이 지나서였다. ‘이 xx들’은 한국 국회(야당)를 지칭한 것이며 ‘바이든’으로 들린 발음은 ‘날리면’이라고 주장했다. 해명은 또 다른 파문을 불렀다. 야당은 “막말 외교보다 나쁜 거짓말”이라고 반발했고, 여당은 “자해외교 말라”며 대통령실을 옹호했지만 옹색했다. 이 발언이 미국 의회를 지칭했건, 국내 야당을 겨냥했던 있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든 게 뉴스다. 사적 발언으로 치부하는 건 변명이다. 


일부 언론은 명백한 실수나 실언조차 기계적 균형보도에 집착했다. 조선일보가 ‘野 “막말로 외교참사” 대통령실 “美의회에 한 말 아니다”’로, 중앙일보는 ‘야당 “이 xx 발언 외교참사”, 대통령실 “야당 향해 말한 것”과 같은 보도다. 기계적 균형은 특정 집단의 비판을 피해가는 비겁한 보도 태도다. 또한 정치발전을 가로막는다. 반성보다는 정치권의 물타기식 발언을 조장한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반면 한국일보는 ‘비속어 섞인 실언·뒤죽박죽 일정···외교참사 논란에 기름 부어’라는 제목의 기사로 관점을 명확히 했다. 사설도 대통령의 무신경한 언사가 빈약한 외교성과 마저 가리게 했다고 꼬집었다. 돋보이는 보도였다.  


언론의 관점 차이는 다양성 측면에서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언론보도가 균형을 빙자해 잘못을 덮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번 순방중 대통령의 실언은 국내정치의 이해득실로 따질 사안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설화를 보도하면서 윤 대통령을 정치 신인(a political rookie)이라고 표현했다. 루키라는 표현이 어쩐지 달갑지 않다.   

최광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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