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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춘추]오이디푸스의 말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는 황소로 변한 바람둥이 제우스의 등에 올라탔다가 크레타 섬까지 납치되었다. 바다를 건너오느라 지친 제우스가 에우로페를 내려놓고 사랑을 나눴던 곳에 크노소스 궁전이 세워지고 그들의 장남인 미노스가 고대 그리스문명을 일구기 시작했다. 유럽 최초의 미노아 문명(Minoan civilization, 기원전 3650~기원전 1170)이 탄생한 것이다.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는 대륙의 명칭인 유럽(Europe)의 어원이 되었다.

페니키아의 왕 아게노르는 사랑하는 딸 에우로페가 행방불명되자 깊은 근심에 휩싸였다. 그는 아들 카드모스를 불러 여동생 에우로페를 찾아오도록 하고, 여동생을 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명령했다. 카드모스는 여동생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맸으나 허사였다. 그는 그리스에 정착하여 테베라는 도시국가를 세웠다.

페니키아는 현재의 레바논 근처에 있던 나라로 고대 알파벳 문자를 최초로 발명한 해상 세력이었다. 그러니 에우로페의 크레타 섬 정착과 카드모스의 테베 건국은 소아시아의 문자가 유럽에 전파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구전으로만 전승되던 것들이 모두 문자화됨으로써 문명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세월이 흘렀다. 라이오스는 카드모스의 후손으로 테베의 왕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그래서 라이오스는 갓 태어난 아들을 산에 버렸다. 죽은 줄로 알았던 아들은 이웃 나라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의 청년은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듣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가 친아버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사실 양아버지였다. 집을 떠난 오이디푸스는 길에서 시비가 붙어 상대편 노인을 죽인다. 그 노인이 테베의 왕이자 친아버지인 라이오스였다. 이때 테베의 성벽에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살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성벽을 지나는 행인에게 “어릴 때는 네발로 걷고, 장성하면 두발로 걸으며, 늙어서는 세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정답을 말하지 못하면 잡아먹고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의 정답이 ‘인간’임을 정확히 밝혀 스핑크스가 죽도록 만들었다. 스핑크스를 퇴치한 오이디푸스는 과부가 된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테베의 왕이 되었다. 왕비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친어머니였다. 나중에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장님이 되어 비참한 생을 살아간다. 여기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테베와 관련된 신화는 에우로페와 카드모스에 의한 문자의 전래에서 시작하여 문자를 말로 승화시킨 그들의 후손 오이디푸스에서 끝을 맺는다. 그 만큼 문자와 말은 중요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대부분 힘으로 괴물을 제압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힘이나 완력이 아닌 ‘말’로서 괴물을 죽였다. 인간의 말은 이처럼 누군가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엄청난 힘을 지녔다. 대개 사람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오이디푸스의 말’도 강력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작심한 듯 거센 말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2월19일에는 “호수에 그냥 돌을 던져도 개구리에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라며 기업규제를 강력히 성토했는가 하면, 3월10일에는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자 암 덩어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3월20일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는 “규제 개혁 저항 공무원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면서 “물건 빼앗는 것만 도둑질이 아니라 일자리를 규제로 빼앗는 것도 도둑질”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이처럼 점점 거세지는 것은 규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를 말로 제압한 것처럼 박 대통령도 말로서 규제를 일소하고 있음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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