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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창씨개명

 

오늘 행사가 있어 준비도 하고 조금 일찍 서둘러 나왔습니다. 약속한 회장님 사무실로 갔더니 불을 켜 있는데 문은 잠겨 있어 전화를 드렸더니 신축현장에 계시다면서 빨리 오시겠다고 합니다.

참 기분이 묘한 게 그동안 자주 드나들면서 못 느끼던 감정이 스칩니다. 다른 때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어서 아무 거리낌 없이 출입을 했는데 이른 아침에 주인 없는 사무실 앞에 서 있자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무슨 여자가 왜 남의 사무실 앞에 서있을까 하는 것 같은 생각이듭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의 생각이지요.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내가 서있던 앉아 있던 누가 쳐다보기나 한다고 이런 터무니없는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길 건너에서 웃으며 다가오십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기가 무섭게 서둘러 컴퓨터를 켜시고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면서 꽃 이름을 물어보십니다. 한 번에 알려드려도 좋겠지만 조금 시간을 끌다 꽃 이름을 알려드립니다. 그것도 새로 바뀐 현재의 이름만 알려드리는데 손님이 오십니다. 그분들끼리 뭔가 중요한 사업상의 대화로 진지한 분위기입니다.

사실 자신 있게 꽃 이름을 말하기가 난처했던 이유가 그 꽃 이름은 원래 개불알꽃인데 이 말을 하는 저도 지금 얼굴을 보이지 않아도 좀 쑥스럽습니다. 그러니 직접 얼굴을 보고 말을 하자면 얼마나 낯이 뜨거울지 충분히 상상이 가시지요? 아마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꽃 이름을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 생긴 이름이 ‘봄까치꽃’ 이름도 참 예쁘지요? 꽃말은 더 예쁘답니다. ‘기쁜 소식’이랍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라는 노래가사처럼 예전의 이름은 잊어주시고 새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좋겠지요. 기왕에 꽃 이름이 나왔으니 얘기를 합니다. 우리 꽃 중에 예쁜 얼굴에도 부르기 난처한 이름이 많이 있습니다.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 지팡이, 개불란 등등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부르기 난처한 이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요즘엔 개명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닌데 이런 꽃에는 새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밖에도 우리 토종 꽃이 외국에 종자등록을 하고 외래어로 부르는 꽃도 많지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라일락입니다. 원래는 수수꽃다리였습니다. 꽃모양이 수수이삭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제는 그 이름보다 라일락으로 알고 있는 형편입니다.

일제강점기 총칼 앞에 창씨개명을 당한 슬픈 역사를 기억하면서 이렇게 빼앗긴 우리 꽃의 이름도 새로 찾아 주면 어떨지 생각하게 됩니다. 뭔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꽃구경 다니며 꽃이 예쁘다고 느끼는데 그치지 말고 그 꽃이 지닌 흑역사를 바로잡아 준다면 꽃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지겠지요.

오늘 모처럼 우리도 꽃 나들이를 간다. 화사한 벚꽃을 보며 그늘에 숨어서 피는 꽃도 지나치지 않고 사진에 담아보고 예쁘다고 말해주고 싶다. 냉이꽃, 제비꽃, 꽃다지, 쇠별꽃, 봄까치꽃이 아름다운 봄날 모두가 기쁜 소식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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