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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향기]그 여자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손을 보면서 그 사람의 이력을 유추한다. 남자들이 여자를 볼 때 얼굴 다음으로 많이 보는 곳도 손이라고 한다. 제 2의 얼굴인 셈이다.

나는 손으로 하는 일을 잘 못한다. 손도 작아 일도 못 하지만 일하는 것을 겁내는 내게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죽으면 흙 속으로 가는 걸 손을 아껴서 뭐해”

손을 보면 생각나는 여자가 있다. 내 손을 한참 들여다보던 여자가 있었다. 전에 살던 집 1층 상가의 여자. 처음 건물 1층에 들어선 것은 ‘○○○ 숯불구이’였다. 식당 주인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넣은 간판을 달았다.

이름이 연극배우와 같았다. 하지만 가냘픈 연극배우와 건강하게 보이는 그 여자는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 없었다. 이름과 여자는 따로국밥처럼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걸걸한 목소리, 부스스한 파마머리가 많은 시간을 식당에서 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십대의 보통 아줌마였다.

여자의 남편이 직접 내부 공사를 마치자 숯불구이 간판이 걸렸다. 3층에 살던 나는 학원이나 조용한 가게가 들어오길 바랐는데 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달리 식당은 잘 되었다. 음식 맛도 괜찮았고 여자도 싹싹했다. 주방일은 삼십이 넘어 보이는 총각이 보고 자신은 카운터를 보거나 주문을 받았다.

처음엔 식당이 들어서서 반갑지 않았지만 우리는 차츰 그 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와 아이들은 가끔 1층에 내려가 식사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인심도 마음에 들고 고기 맛도 좋아 아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입소문이 제법 났고 손님도 많아졌다. 그러나 식당 여자의 얼굴은 그리 밝아지지 않았다. 웃기는 잘하지만 웃음 끝이 축축했다.

어느 날, 식당 통유리가 깨어지는 일이 생겼다. 여자의 남편이 차를 몰고 식당으로 돌진했다. 술에 취해서였다. 인테리어 일을 하는데 일이 벌이가 들쑥날쑥하여 시원치 않는 모양이었다.

여자의 말에 의하면 남편이 의처증도 있다고 했다. 웃음이 헤프다며 트집을 잡았다. 그러다가 술을 마시면 그런 엉뚱한 짓을 한다고 하였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남편까지 행패를 부린다며 속상해했다.

힘들어 어떻게 하냐고 몇 마디 거들어주었다. 그 때부터 부침개나 샐러드를 들고 우리 집에 올라왔다. 이런 저런 애기를 하다가도 아쉬운 이야기를 했고 하소연 끝에는 새댁이 부럽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주부가 뭐 부러울 것이 있다고 그러냐며 그냥 빈말로 흘려들었다.

그 남편이 와서 큰소리를 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무엇을 부수는 소리도 들리고 여자의 찢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런 날은 식당 문을 열지 않았다. 가게 손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아예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여자가 없는 가게는 문을 닫았다. 식당에서 먹고 자던 총각은 한두 달 여자를 기다리는 눈치였으나 결국 떠났다. 그 총각이 떠나고 몇 달 후 여자가 찾아왔다. 다른 식당 찬모로 일한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늘 피곤이 가시지 않았던 여자의 지친 얼굴이었다. 식당일 하며 애들을 키웠던 여자. 미처 손질할 틈도 없어서 대충 틀어 올린 머리가 자주 헝클어졌다. 늦도록 일해서 갈라져 쉰 목소리로 ‘새댁,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야’라고 버릇처럼 말하던 여자. 물 한 방울 안 묻혀 봤을 것 같다며 내 손을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 여자.

할머니의 핀잔처럼 나는 평생 손을 아끼며 산다. 수시로 핸드크림을 바르다보면 문득문득 그 여자가 생각나는 것이다. 손만 보고서 나를 거친 일 못해 본 한가한 ‘세컨드’ 쯤으로 알던 여자. 그 여자의 뒤웅박은 어떻게 되었을까? 깨뜨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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