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 라는 체벌을 동원한 자녀교육도 시대가 바뀌면서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하지만 많은 아동들이 아직도 학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학대의 정도도 날이 갈수록 끔찍해 지고 있다. 수시로 발생하는 아동치사 사건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아이를 죽게 하거나 심한 학대로 사회 지탄을 받는 부모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잘못된 행동을 고치려 매를 들었다는 변명이 그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범죄 전과나 정신질환이 있는 이가 아니라 주변의 평범한 어른이라는 사실이다. 정신과전문의들에 따르면 이런 부모들은 어릴 때 이런저런 이유로 맞은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어릴 적 받은 학대는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고.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전가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학대가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것이다. 폴란드 정신과의사 엘리스 밀러의 주장은 더 구체적이다. 그의 저서‘사랑의 매는 없다’에서 “구소련 독재자 스탈린은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매일 맞고 자랐다. 커서 그 후유증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죽일거라는 망상에 빠지게 했다. 집권후 그는 이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적등 수많은 사람을 처형했다
겨울만 되면 일기예보 서두에 단골로 등장했던 것이 ‘시베리아 고기압’ 이다. 한파를 표현할 때 특히 그랬다. 하지만 요샌 듣기가 쉽지 않다. ‘겨울다운 겨울’이 실종 돼서다. 대륙이 냉각돼 발생하는 한랭 건조한 기온이 우리나라까지 영향을 미친 시베리아 고기압. 넓은 유라시아대륙에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 남쪽의 난기류 유입도 저지하기 때문에 범위는 동서로 약 1만㎞ 남북으로 약 5천㎞에 달한다. 권역내 기온은 영하 40도 이하다. 속한 지역은 한랭 건조한 북서계절풍이 강하게 불고, 눈발이 자주 날린다. 대신 발달한 고기압이 쇠약할 때까지의 주기가 약 7일로, 기간의 비율이 3:4 정도다. 한반도 부근의 겨울철 날씨에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연유다. 그런가 하면 겨울이면 눈이 자주 내려 ‘설(雪) 주의보’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엔 실종됐다. 폭설은 커녕 첫눈도 제대로 내리지 않는다. 기온마저 봄가을처럼 따뜻하다. 겨울철 난동(暖冬)은 우리뿐만 아니다. 환경 파괴에 따른 지구의 온실 효과 영향으로 북극과 남극의 빙하, 히말라야·알프스 산맥의 만년설까지 녹여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있다. 금세기 내 전 세계 78개 해안지역이 바닷물에 잠기게 될
2016년,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우리 문단을 흥분시킨 적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다. 그 한 해 대한민국은 ‘한강’신드롬에 빠졌다. 이런 것들이 가능 했던 것은 맨부커상이 갖는 권위 때문이었다. 맨부커상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다. 1968년부터 매년 영국 연방내에서 출판된 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상을 주었는데 2005년부터는 영어번역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맨부커인터내셔널 상을 함께 시상하고 있다. 한강은 이 상을 수상한 것이다. 1903년부터 단 한 차례도 시상을 거른적이 없는 프랑스 콩쿠르상도 권위면에서 세계 3대 문학상에 속한다. 그해 상상력이 가장 풍부한 산문 작품에게 수여 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색적이 것은 상금이다. 단 10유로(한화 1만3천원)여서다. 최초 상을 시상할 때 재능있는 신인 작가에게 두 번 책을 쓸수 있도록 50프랑의 상금이 주어졌는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 권위 면에서 많이 퇴색되기도 했지만, 노벨 문학상은 여전히 세계 3대 문학상 중 최고로 친다. 맨부커와 콩쿠르상과 달리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특정 작품이 아닌 작가의
‘유스퀘이크’(youthquake). 젊음(youth)과 지진(earthquake)의 합성어다. ‘청년층의 반란’을 뜻한다. 청년 유권자가 정치 판을 흔드는 현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1965년 세계적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장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영국의 새로운 청년 문화를 묘사하며 처음 사용했다. 지금은 젊은 세대가 정치적 변혁을 이끈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지난해 세계곳곳에서 ‘유스퀘이크’는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34세 여성총리부터 40대 대통령, 수많은 20~30대의 젊은이들이 각종 선거에 당선 되면서 영 파워를 과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에 있어서 젊은이의 힘과 영향력을 더는 과소평가할 수 없게 된 것이 세계적 추세다. 이를 의식 한 듯 여야는 유스퀘이크 대비에 분주하다. 여당은 최근, ‘평범한 이남자(20대 남성)’와 30대 소방관을 총선 인재로 영입했다. 자유한국당도 전국 지역구 중 최대 30%에서 2040세대를 공천하겠다고 공언했다. 거기에 공천심사 비용과 경선 비용을 면제·삭감해 주기로 했다. 정의당은 한발 더나가 만 16세까지 선거 연령을 낮추는 계획을 내놨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는 선거 연령을 ‘만 19세
지난 2003년 2월 10일. 세계보건기구(WHO) 베이징 지부는 중국 광둥성에서 100명 넘게 ‘이상한 전염병’에 감염됐고 불과 일주일 사이에 여러 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철저히 은폐토록 했다. 결과는 재앙으로 이어졌다. 중국 정부가 쉬쉬 하는 사이 괴질은 홍콩으로 퍼졌고 이후 급속도로 확산, 전세계 37개국에서 8천여 명이 감염돼 774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에선 5천300명이 감염, 349명, 홍콩에선 299명이 사망했다. 이른바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재앙의 본말이다. 사실을 알리고 초기에 잘 대처했더라면 ‘독감 수준’으로 차분하게 이겨냈을지도 모를 전염병이 재앙이 된 것이다. 전염병 관리 당국의 ‘비밀주의’로 인해 재앙이 될 뻔 한 사례는 최근에 또 있다. 지난해 11월 네이멍구에서 흑사병 환자 두명이 발생, 베이징에서 치료를 받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 졌다. 그러나 이들이 어느 병원에 처음 입원했으며, 얼마나 오래 있다가 베이징으로 옮겼는지, 이동 경로는 어땠는지 등 자세한 경위는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자 국제사회를 비롯 자국내 비난 여론이 높게 일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아랑곳 하지
송어와 연어는 비슷하다. 생태학적으로 같은 종이면서 거친 파도도 마다하지 않고 모태 유전자의 명에 따라 먼 바다로 떠나는 속성이 있어서다. 다르다면 외모다. 송어는 연어와 달리 주둥이가 둔하며 몸빛은 등쪽은 농남색, 배쪽은 은백색이고 옆구리에는 암갈색의 반점이 있다. 심산유곡 차가운 1급수에서 부화한 새끼 송어들은 민물에서 2년가량 자라면 15∼20㎝쯤 된다. 이즈음 하천을 떠날 녀석들은 신체 구조가 바뀌기 시작한다. 먼 바다로 나가기 위한 채비를 위해서다. 가장 큰 변화는 짠물에서 적응이 가능토록 호르몬 등 내분비선이 바뀌는 것이다. 염류가 바로 피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거기에 회귀용 시스템(GPS)도 장착된다. 그러나 새끼 송어 중 모두가 항해 채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민물에 그냥 남아 또 다른 삶을 사는 송어도 상당수 된다. 이들은 약 70% 이상이 수컷이다. 3∼4년 뒤 성장해 귀향하는 송어에 비해 몸 크기도 2∼3배 작다. 이런 송어를 산천어라 부른다. 산천어와 비슷한 물고기는 또 있다. 당초 산란과 성장을 위해 바다와 민물을 오가던 빙어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바다에 나가지 못하고 민물에 갇혀 살게 되면서 지금의 생태를 가지게 되었다.
사람에게 미래를 보는 눈이 주어졌다면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린다. 타고난 운명을 미리 알아 걱정거리가 사라지고 길흉화복에 적절히 대처, 희로애락중 슬픔과 분노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불행하게도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다. 그래서 사는 동안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속에 방황한다. 특히 해가 바뀌고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이런 고민은 더욱 깊어 간다. 팔자소관이려니 하고 체념하며 살아가지만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문제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나타난다. 어느 시대 누구를 막론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는 이유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점(占)이다. 역사도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다. 정보와 미래 예측이 가능한 자료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도 역할엔 변함이 없다. 인기도 식을줄 모른다. 거기엔 무속인들도 포함된다. 덕분(?)에 첨단시대지만 사람의 내일을 예언하는 점(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거대한 시장으로 커가고 있다. 규모가 영화산업에 육박하는 2조원이 넘는다는 조사도 있다. 점점 불확실 시대로 가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언제쯤 괜찮아질까. 풀리긴 할까. 나이에 상관없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는 더욱 붉다. 경자년(庚子年) 첫 아침 해도 마찬 가지였다. 올해도 유난히 새롭고 반가웠다. 붉은 해를 보며 사람들은 저마다 소박하지만 소중한 소망을 빈다. 걱정과 근심을 떨쳐 보내고 새 다짐도 한다. 시인 박두진은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고 노래했다. 새해를 맞는 우리의 설레는 마음을 어서 보듬으라고. 새해를 맞은 마음가짐은 다르다. 크고 작은 결심을 하기 때문이다. 마치 그 결심은 시인 정채봉이 읊은 ‘첫마음’ 같아서 더욱 그렇다.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학교에 입학하여 새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개업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기쁨으로 맞는다면/여행을 떠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