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소] 조선 후기부터 500년간 자리를 지키다…인천 미추홀구 ‘여우실 경주김씨 종가터’

2023.12.03 14:12:42 인천 1면

2004년 ‘여우실 경주김씨 종가터’ 표지석 세워져
한국전쟁 당시, 경주김씨 문중서 학교 부지 제공

 

24. 조선 후기부터 500년간 자리를 지키다…인천 미추홀구 ‘여우실 경주김씨 종가터’

 

수많은 주민이 오가는 인천 미추홀구청 종합민원실 앞. 작은 표지석 하나가 서 있다.

 

숭의동에는 과거 ‘여의실’ 또는 ‘여우실’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었다. 이곳에는 조선왕조 개국공신 김균의 손자인 김종이 1450년경 한양에서 옮겨와 정착했다.

 

경주김씨 집성촌으로, 후손들은 조선 후기를 거쳐 500년 넘게 여우실을 지켜왔다. 6선 의원으로 11대 국회 부의장을 지낸 고 김은하(1923∼2003) 씨가 대표 인물이다.

 

과거에도 지금처럼 발길이 끊이지 않았는데, 6·25전쟁 당시 경주김씨 문중에서 여우실 일대를 학교 부지로 내놓은 덕분이다.

 

인천으로 피난 온 개성사범학교가 숭의초등학교 교사를 빌려 개교하게 됐다. 개성사범학교는 1952년 인천사범학교로 교명을 바꾸며, 인천에 자리 잡게 됐다.

 

이후 1957년 숭의동 203번지 부지에 지상 3층·총면적 3392㎡ 규모로 본관을 완공됐다.

 

인천사범학교는 1962년 인천교육대학으로 개편됐으며, 1990년 계산동 캠퍼스로 이전했다. 학생들은 떠났으나 본관은 여전히 미추홀구청소년수련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우실에는 경주김씨 문중의 선영이 있었다.

 

일제 말에는 일본인의 거주지가 도심에서부터 점점 넓혀오면서 현재 숭의로터리 일대까지 밀려왔다. 또 주변 도로가 뚫리며, 경주김씨 선영과 마을이 나눠지게 됐다.

 

결국 경기 시흥시로 옮기게 됐다.

 

남아있던 여우실 종가와 사당은 1996년을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 자리에는 미추홀구청 종합민원실이 조성돼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다.

 

현재 경주김씨 종가터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종가터가 시민의 종합민원실로 변모하여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기에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명가의 터임을 되새기는 표석을 세운다”

 

미추홀구청과 학산문화원은 지난 2004년 9월 미추홀구 종합민원실 앞 화단에 ‘여우실 경주김씨 종가터’ 표지석을 만들었다.

 

[ 경기신문 / 인천 = 김민지 기자 ]

김민지 기자 shfkd@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