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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고창농악보존회의 ‘풍무’ 공연

 

지난 4일 늦은 저녁 수원청소년문화센터에서 고창농악보존회에서 마련한 풍무공연이 열렸다. 수원시와 고창군의 예술문화교류공연 일환으로 열리게 된 초청공연이었지만 많은 단원들이 참여한 신명 나는 놀이는 좌석을 가득 메운 600여 명의 관객을 사로잡았다.

농가에서 칠월은 모두가 바쁘고 어려운 시기다. 필자도 농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농사를 지은 바 있어서 농가의 고충을 잘 아는 편이다. 곡식은 농부의 피땀으로 자란다 했던가. 농업인으로 살아온 부친의 삶의 행로가 만만치 않았기에 지금도 고향 해남의 인삼밭에 가보면 나모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심은 만큼 거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농사는 사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농사라는 게 기후와 환경, 온도 등 대자연과 대결하고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하므로, 농부들의 삶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근심 가득한 농부의 심정을 달래고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농악이다. 농악과 판소리의 성지로 통하는 전북 고창군은 미당 서정주 시인으로도 유명하고 가까운 문인들이 이 지역 출신이기도 해서 필자는 고창이 낯설지 않다.

고창군은 산수가 깊고 아름다운 절경으로 유명하다. 선운사와 고인돌 유적지 등을 찾는 관광객들이 연중 붐비고 있다. 이런 고창과 수원시가 우애를 다지고 있다. 지난 1월 수원시립교향악단이 고창군의 초청을 받아 고창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가졌고, 이번 공연은 수원시가 예술문화교류의 일환으로 고창농악보존회를 초청한 무대였기에 감회가 크다. 정조의 역사가 깃든 수원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고창은 고인돌 유적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므로, 두 시군은 공통점도 많다. 고창농악보존회의 공연을 통해 순박하고 따스한 남도 사람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다. 구슬픈 남도 사투리가 다정다감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고창농무는 참석한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장맛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실내 공연장은 고창 사람들의 음률과 선율로 가득했다. 필자는 그들이 만들어낸 소리와 율동, 춤의 독특한 형식에도 이목을 빼앗겼지만 공연 구성원들의 특성에 더 관심이 간 것이다. 이들은 낮에는 들판에 나가 일하거나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시간에 모여 틈틈이 징과 꽹과리를 들고 노래를 하고 창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녀노소 세대를 넘어 호흡하는 이들의 눈빛에서 공연의 상업적인 냄새가 나지 않아 참 인상 깊었다.

누구나 마주치면 정이 들 수밖에 없을 만큼 순박한 단원들의 의상과 절묘한 표정들이 내내 머리에 남는다. 모든 일상사가 그러하지만 여유가 생기고 명예가 높아지면 우쭐대는 태도로 겸양의 미덕을 놓치게 된다. 어려울 때는 남의 어려움도 더 살피지만 넉넉할 때는 어려운 사람들의 기준보다는 자신의 현실적인 잣대로 평가하고 분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고창농악보존회 단원들에게서는 낮은 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려는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열띤 춤과 소리를 보고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창농악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이 공연이 널리 전파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서민들의 삶과 농부들의 삶이 노래와 춤, 음악 등에 다양하게 버무려진 듯하다. 고창아리랑 국악예술단의 합창과 문굿, 풍장굿, 도둑 잽이 극, 판굿이라는 ‘판을 거닐다’ 순으로 공연을 마쳤다.

이번 행사를 위해 애쓴 염태영 수원시장과 이강수 고창군수, 고창농악보존회 이명훈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수원예총회장을 맡고 있는 김훈동 시인에게도 큰 박수를 보낸다.

예부터 우리 민족에게 농사는 가장 중요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농업(農業)은 천하(天下)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根本)이다’라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이 말이 퇴색되어가고 있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되새겨야 할 말이다. 농부들이 농악을 통해 흉작을 기원하듯이 삶의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소시민들에게 농악은 세상에서 가장 약효 좋은 자양강장제와도 같다. 이 자양강장제가 세상에 널리 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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