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 만물의 수고로움을 위로하는 저녁시간 산길을 걷고 싶어 아파트 뒷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횡단보도 앞에서 어린 소녀를 만났다. 그 어린이는 내게 대뜸 “몇 살이세요?” 하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다 “70살이야” 하니까 어린이가 “나는 여섯 살이에요” 하면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열 배도 넘게 더 먹었구나” 하고 있는데, 어린이 어머니가 와 소녀에게 뭐 하고 있느냐고 물어 나는 서둘러 내 길을 걸었다. 어린이가 쉽게 내게 말을 걸어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움’ 속에서 그리움과의 이별을 못해 바보 같은 노객(老客)이라고 스스로를 구박하고 사는 내게 말을 걸어오다니. 그런데 하필이면 왜 나이를 물어온 것일까. 온통 흰머리도 아니고 아직 바르게 걸을 만한데- 순간이었다. ‘당신 삶의 세월을 잊지 마라. 나이에 걸맞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반발이 격화하면서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필수 의료 분야의 고질적 의사 부족 현상 개선을 위한 방편으로 추진되는 의대 증원을 놓고 빚어진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가 이처럼 악화한 것은 일단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하지만 정부 측만 나무라기에는 전문가집단인 의사단체들의 요령부득 탓도 적지 않다는 게 민심의 요체다. 소위 ‘빅5’로 불리는 서울 시내 주요 상급종합병원 5곳(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의 전공의(5곳 병원 전체 의사 인력의 39%)들이 집단 사직 움직임을 보이면서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의대 정원을 늘려서 필수 의료 위기를 해소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은 정부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
“한국정치의 최대 걸림돌은 언론입니다. 언론이 바뀌면 한국 민주주의가 50년 앞서 나갈 것입니다.” 유학에서 돌아와 강단에 선 필자가 자주 하던 말이다. 그 언젠가부터 기성언론이 앞장서 ‘운동권 기득권’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기득권은 어떠한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난공불락 아니던가.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도 하고, 그 대통령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 은근 슬쩍 여론 편에 다가와 탄핵에 앞장서기도 한다. 그야말로 양면의 얼굴 야누스다. 4.10 총선도 그들이 좌지우지 할듯하다. 그들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한동훈의 말을 대서특필하기에 급급하다. 한 위원장은 운동권 대 전문가 프레임으로 총선의 포문을 열었다. 임종석 대 윤희숙, 정청래 대 김경률... 하지만 그의 말은 틀렸다. 이들 중 누가 더 정치 전문가인가? 임종석, 정청래 등은 필시 운동권 출신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찍 정치권에 들어가 정치를 경험한 정치 전문가다. 반면에 윤희숙, 김경률은 정치권에 발을 디딘지 얼마 안 되는 정치 초년생이다. 그런데 진위를 따져보지 않고 한 위원장의 말을 표제어로 덜컥 뽑는 저의는 무엇인가. 총선 정국을 정책선거가 아닌 빈탕선거로 또 몰아가겠다는 것인가? 필자는 중립을 표방한다. 따라서 그 누구의 편에도 설 생각이 없다. 단지 잘 못된 것을 잘 못 됐다고 누군가가 지적해 주길 원하는 데 그런 사람이 없기에 나선 것뿐이다. 그러니 필자를 민주당으로 엮어 이 글을 왜곡시킬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란다. 언론이 ‘제3지대’니 ‘빅텐트’니 하는 단어를 써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 총선에서 누가 이 용어를 맨 먼저 사용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신생정치단체(개혁신당, 새로운 미래, 새로운 선택...)를 제3지대라 부르는 건 양심 없는 일이다. 이들은 대의명분 없이 이 정당 저 정당과 불협화음을 내고 떨어져 나온 사람들에 불과하다. 제3지대란 본래 ‘여당과 야당에 대항하는 정치 세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개혁신당, 새로운 미래, 새로운 선택... 이들 중 누가 도대체 대항세력이란 말인가? 제3지대하면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가 생각난다. 2014년 5월 등장한 이 정당은 “우리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분노를 정치적 변화로 전환하기”를 기치로 내걸었다. 기성 정당과 달리 분열을 넘어 기권자, 특히 젊은이들을 다시 결집시키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엘리트 부패와의 싸움, 에너지 주권, 긴축 정책 거부, 자유 언론 수호, 디지털 민주주의 및 세속주의 등. 굵직한 이슈를 선거에서 쟁점화 시켰다. 그렇담 소위 제3지대인 개혁신당의 선거 쟁점은 무엇인가? 노인 무임승차권 폐지? 고작 또 갈라치기란 말인가? 서구 정치의 알맹이 대신 표피만 가져와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한국 정치판의 관행을 불식시키려면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 오피니언 리더이자 제4의 권력인 언론이 본분을 망각한 채 아무거나 마구 써댄다면 이는 필시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리고 말 것이다. 정치인이 시답지 않은 프레임으로 선거를 혼탁 시키려 들면 그걸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다. 1980년대 초 프랑스 극우 정당 르펜이 등장했을 때 프랑스의 메이저 언론은 그에게 절대 마이크를 주지 않았다. 언론의 이러한 조치는 르펜의 부상에 큰 걸림돌이 됐다.
운명의 꽃미남이 내게로 왔다! 앗! 근데 그가 악명높은 B형이라니! 2005년 이동건,한지혜 주연의 B형남자란 영화의 홍보카피다. 2004년 가수 김현정은 “태양에너지 그리고 B형남자”란 노래를 발표하고 B형 남자들의 항의에 소속사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까지 올렸다 80년대 들리기 시작하더니 90년대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난 89년에 장가갔으니 잘 비껴간 셈이다. 90년대에서 2010년 초까진 혈액형 성격론이 맹신되던 분위기였다. 학자들이 말해도 귓전으로 흘렸다. 과학이 사회적 통념을 이긴다는게 어렵다. 더 신기한건 B형 여자는 이 사회적 핸디캡에서 비켜나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일본만 혈액형별 성격을 믿는 지구상 유이한 나라다.어이없는 일이 사회를 바꾸곤 한다. 1971년 일본 방송작가 노미 마사히코가 “혈액형 인간학”을 출간하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본에선 혈액형별 성격론이 사회적으로 유행했다. 일본문화가 유입되며 우리나라에 뜬금없이 흘러와 90년대 이후엔 정설이 되었다. 2017년 갤럽조사 58%, 2021년 한국리서치 조사 56%가 혈액형별 성격차이가 있다고 믿는다로 나왔다. 중국에선 혈액형 대신 별자리가 중시된다. 태어난 별자리에 따른 운세와 인생의 길흉이 있다는 일종의 별자리 점성술이다. 한국 연예인 프로필을 보면 대체로 혈액형이 기재되어 있는 반면 중국 연예인의 프로필에는 별자리가 써있다. 모든게 같은 일란성 쌍둥이도 성격은 다르다. 아마존의눈물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조에족은 부족 전체가 100% A형이다. 이들의 성격은 똑같을까? 2020년대부터 혈액형 성격론을 과감히 밀어내고 대세를 잡은게 MBTI다. 16개 성격유형의 자기 점검법이다. 그럴듯한 16개 유형의 영문조합으로 성격을 진단해주니 뭔가 있어 보인다. 특히 Z세대와 저연령 M세대의 믿음이 강하다. 내 보기엔 이야기하기 재밌는 인싸들의 토크 아이템일 뿐인데. “넌 F야? 난 T야.” 여기서 F는 Feeling, 감정적 사람이고 T는 Thinking 사고형적 사람이다. 심리학에선 과학적 검증이 안된 단순심리검사 일뿐이라고 무시하지만 전세계에 급격히 전파되면서 이검사를 인증해주는 CPP사는 연간 2천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있다. 유사과학의 우산을 쓴 마케팅이다. 대중산업사회의 유행과 흐름은 방송에 의해 주도된다. 난 유재석의 MBTI 관심없다. 예능에서 밝힌 유재석의 MBTI는 ISFP란다.검색하면 유재석 성격이 쫙뜬다. 내보기엔 연예인중 1/16이 ISFP성격일텐데. 예능에서 같이 웃고 대화를 끌어가기에 MBTI는 좋은 아이템이다. 집사부일체에서는 아예 한회분을 박나래와 장도연의 MBTI 라이프를 전형화시켜 보여주면서 같이 출연한 이승기,차은우의 MBTI를 알려준다. 80억명의 인구가 4개의 혈액형별 성격으로, 16개의 MBTI로 유형화될수 있겠냐. 장군 중에 지장도 있고,유비같은 덕장도 있고,관우같은 용장도 있고,장비같은 맹장도 있다. 현대전에서 작전담당 장군은 지장이 아니면 안된다. MBTI의 사용빈도가 가장 많은 나라는 한국과 중국이라고 멕시코 언론마저 흥미있게 보도했다. 재미나 단순한 자기점검적 차원의 성격 테스트가 예능의 소재로 사용되면서 신뢰도를 얻고 확산됐다. 특히 Z세대의 진로와 미래탐색에 남용되고 있다. “교수님, 전 F성향이라 PD 가 맞을거 같아요.” “전 MBTI가 ENT(E:외향적,N:직관적,T:사고적)로 나오는데 PD가 안맞는거 아닌가요? 하고싶은데” 미친다.이세상의 직업이 20만개를 넘고 성격유형은 16개일뿐인데 그런 매칭이 가능하냐. 프로야구선수 전체를 MBTI 검사해보면 16개 유형이 다나온다. 나랑 내기해도 좋다. 4차산업시대는 산업도 직무도 컨버전스를 특징으로 하고있다. 나뉘는게 아니라 통합적이다. MBTI는 그냥 재미로 보면 된다. 안해도 된다. 내가 더 문제인거 같다. 학생들에게 MBTI에 매이지 말라고 말하면서 학생들은 결코 보지않는 신문칼럼에 이야기를 쓰고 있다니. 유튜브로 올려야 하는데. 세심한 A형 혈액형과 분석적인 T형 성격을 가진 나는 학생들이 못볼까봐 글쓰면서도 걱정이다.
지난 2009년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후 ‘왕릉 원형 복원계획’에 따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은 2027년까지 철거된다. 대한체육회는 이에 따라 전국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대체 시설 부지를 공모, 오는 4월 경 부지를 결정한 후 2027년 착공, 2029년 준공할 계획이다. 국비 등 2000억 원이 투입되는 태릉선수촌 국제스케이트장 대체 시설 부지 공모는 지난 8일 마감됐다. 신청서를 제출한 지방정부는 경기도 양주시, 동두천시, 김포시와, 인천시 서구, 강원도 춘천시, 원주시, 철원군 등 7곳이었다. 이들은 국제스케이트장 건립 후 관련 대회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유치 이유도 나름 타당하다. 강원도 지역 지방정부들은 평창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는 시설과 경험, 낙후된 지역발전을 내세우고 있다..
경기도는 연천군과 함께 2022년 3월부터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연천군 청산면 주민들에게 2026년 12월까지 58개월 동안 매월 15만 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한다. 지역화폐는 병원, 약국, 보습학원을 제외하고 청산면에서 3개월 내 사용해야 한다. 사업이 추진된 지난 23개월간 무슨 변화가 생겼을까? 가장 큰 변화는 인구의 증가다. 시범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2021년 12월 청산면 인구는 3,895명이었다. 2023년 12월의 인구는 4,176명으로 281명이 늘었다. 이 기간 연천군의 인구는 42,721명에서 41,584명으로 1,137이 줄었다. 연천군의 2개 읍, 8개 면 중 인구가 늘어난 읍·면은 청산면이 유일하다. 연천군은 가평군과 함께 경기도에서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인구소멸 위기 지자체다. 이런 곳에서 인구감소 곡선의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지역화..
북한은 예방의학, 남한은 치료중심 의학이다. 북한은 1966년 보건의료를 ‘예방의학’이라고 규정했다. 예방의학은 병이 생기지 않도록 방지 하는 것이고, 치료중심 의학은 이미 발생한 병의 회복에 중점을 둔다. 예방의학은 환자가 발생하기전 의사가 담당구역을 찾아가 예방하고, 치료중심 의학은 환자가 의사를 찾아간다. 찾아가고 찾아오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으면 의사나 환자도 좋겠다. 북한에는 의사담당구역제가 있다. 이 제도는 1948년부터 시행되었다. 의사에게 담당구역을 맡겨 구역내 주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의사는 담당구역으로 나가 방역과 위생에 대한 상식을 전달한다. 의사와 간호사는 약품과 주사기를 챙겨가지고 담당구역 학교에 찾아가 예방접종을 했다. 아버지가 자주 왕진가방을 메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다녀오면 가방안에 환자들..
국회의원 총선거가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침에는 예비후보자들의 출근 길 인사를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도시의 유동인구가 많은 건물에는 후보자의 사진과 슬로건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촘촘히 붙어 있다. 유권자들은 총선 경쟁이 정점으로 진입한 것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경기장이라 할 수 있는 선거구 획정이 미뤄지고 있다. 여야 후보자들의 경기는 이미 시작됐는데 정작 경기장은 없는 형국이다. 선거 때마다 반복됐던 국민 참정권 훼손 사태가 이번 총선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직전 선거였던 21대 총선 때도 선거일 39일 전에야 선거구가 획정되서 국민적 비난을 받았지만, 이번 총선은 그보다 더 늦게 선거구 획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우려의 배경에는 두 가지 원인이 지목되고 있다. 하나는 선거구 획..
가수 나얼이 영화를 보고 관람인증을 SNS에 남겼다가 "팬으로서 실망이다"는 거센 비판이 쏟아지자 댓글창을 닫아버린 일이 있었다. 강원래도 같은 영화를 보러가서 휠체어가 못들어간 문제를 토로했다가 "봐도 왜 그걸 봐서 난리냐"는 댓글 테러를 불러왔다. 이 사달은 그 영화가 이승만전대통령의 생애를 그린 다큐영화 ‘건국전쟁’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다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에 어디 비난만 따르겠는가? “엔딩자막이 올라가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 “세상에 한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동상하나 없이 이토록 홀대받는 나라가 또 있을까?”라며 개탄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취향에 달린 문제는 빼고 팩트는 짚고 넘어가자. 이승만 동상은 많았고 지금도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국부로 모셔야 한다’며 살아있는 이승만의 동상을 전..
책을 읽지 않는 한국인 작년 프랑스 여행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프랑스인들의 독서 사랑이었다. 2017년 OECD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 통계에 따르면,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에 비해 한국은 0.8권으로 최하위이다. 한국인들이 책을 안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일 때문에 바쁘고, 각종 디지털 영상 매체로 보는 콘텐츠 때문이라고 한다. 디지털도서나 오디오북을 듣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 종이 책을 선호한다. 한 장씩 넘기는 종이의 감촉과 남은 부분보다 읽은 부분이 점점 더 두꺼워지는 부피감을 뿌듯하게 느낄 수 있고,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고책에서 찾아내는 보물들 책읽기에 속도가 붙은 요즘 나는 거의 매주 책을 산다. 책값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최근서적이 아닌 경우에는 중고책을 사서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 책 같은 중고책을 선호했는데 재고가 없어서 허름한 중고책을 사서 보니 밑줄 친 것에 눈길이 갔다. 이 사람은 왜 이 문장에 밑줄을 쳤을까? 그 책의 맥락을 짚어가며 읽는 데에 그 밑줄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어떤 책에는 속표지나 페이지의 여백에 독자의 생각을 적어놓은 메모도 발견되었다. 그런 책을 만나면 그 책의 전 주인과 일면식도 없지만 오래된 벗 같은 친밀감이 느껴졌고, 그것이 사소한 발견의 즐거움이 되기도 했다. 내가 구입한 중고책 중 사소한 발견의 백미는 파리 여행서적이었다. 그 책의 전 주인이 얼마나 꼼꼼하게 파리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책의 비닐 표지 안에는 파리 지도와 면세점 할인쿠폰도 들어있었고 다녀간 곳마다 책갈피와 메모가 있었다. 어떤 페이지에는 가족에게 줄 선물리스트와 구입처도 적혀있었다. 그 책이 나의 파리 여행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다. 중고책 읽기의 활성화를 위해 우리가 도서관에서 빌리는 모든 책들은 중고책이다. 한 권의 책을 한 명만 읽고 묵혀두는 것은 낭비이다. 심지어 읽지도 않은 채 전시용으로 서가에 꽂혀있기만 하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여러 명이 읽어서 허름해지고 밑줄이 그어지고 여백에 독자의 생각이 적힌 책은 그야말로 보물이다. 작가나 출판사들은 자신들의 수익이 줄어든다고 생각하여 중고책 읽기 활성화를 꺼려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독서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독서인구가 2배 증가하고 1인당 독서량이 2배 증가하도록 값싼 중고책을 권장하고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책의 판매부수에는 중고책도 포함되어야 한다. 중고책을 읽다보면 종종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나서 새 책을 구입하는데 그것이야 말로 아깝지 않은 행복한 소비가 아닐까? 자, 이제! 오늘 읽고 싶은 책 몇 권을 중고책 사이트에서 주문하라. 그 책을 읽기 시작하면 중고책의 매력, 그 사소한 발견의 뿌듯함에 동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