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잡힌 관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매우 어렵다. 인간이 행동을 하기 전에 올바른 관점을 갖지 못한다면 인간의 행동은 의미가 없거나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균형 잡힌 관점과 열린 사고는 인간 행동의 기준이며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개인은 나름대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 관점은 소중한 경험들이 쌓여 자신만의 관점과 세계를 형성하고 있고 고착화되면서 특징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균형을 잃을 수 있고 자신만의 틀 속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즉 이러한 균형 접힌 관점과 닫힌 사고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타인과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곤한다. “균형 잡힌 관점”과 “균형 접힌 관점”은 글자 하나만 다르지만 내용면에서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자신의 동공에 투영되어진 것만을 믿고 본래 온전한 모습의 일부만을 받아들여 해석한다고 한다. 그래서 동일한 것에 대해 개인들이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관점의 차이를 갖으며 균형이 없는 사고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개인의 관점이 균형이 없는 닫힌 사고라고 할 수 없지만 모
약방에 감초가 없으면 약을 처방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감초 하나로 보면 별것 아닌 약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약의 효능과 전체 구성에서 보면 뺄래야 뺄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나라에서 ‘예술인’으로 산다는 것은 ‘약방의 감초’와도 같이 현대산업사회의 성장가치 창출을 위해 많은 희생과 노력을 더하며 긴 세월을 국가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대한민국의 예술인으로 살고 있거나 혹은 살아온 것에 대해 충분한 자긍심을 가지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한 국가나 지방정부의 가치체계를 규정짓는 척도는 예술문화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진국의 척도가 경제지표(1인당 GNP) 외에 그 구성원의 삶의 질을 대변하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평가하는 것 또한 이에 다름 아니다. 이는 경제적 독립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의 동반완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외국과 중산층의 개념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그것은 경제적 관점으로 규정짓는 데 반해 유럽과 미국은 페어플레이정신 및 예술문화를 즐길 줄 아는 예술
1960∼70년대 암 진단을 받고 나서 5년 후까지 살아있으면 완치라고 보았다. 반면 5년이 지나기 전에 사망했다면 치료 실패라고 했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5년 생존율’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암 환자에 대한 통계를 얘기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부 역시 ‘완치율’ 대신 ‘5년 생존율’로 통계를 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엊그제 ‘암’에 대한 반가운 통계를 발표했다. 암 사전검진과 치료기술 발달로 우리나라 암환자의 ‘생존률’이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다. 통계에 따르면 2012~2016년 암을 진단받은 환자가 일반인과 비교해 5년간 생존할 확률은 70.6%로 2001~2005년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5년 생존율 54%보다 1.3배 증가했다. 특히 국가암검진사업 대상인 위암, 대장암, 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의 2012~2016년 생존율은 우리나라가 70.6%로 미국(69.2%), 캐나다(60%), 일본(62.1%)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다. 암종별 생존율은 갑상선암(100.2%), 전립선암(93.9%), 유방암(92.7%) 순으로 높았고 간암(34.3%), 폐암(27.6%), 췌장암(11%)의 생존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암종별 생존율은 100%에
몸짓 /박원희 버스를 탔는데 앞에 두 사람이 수화(手話)를 한다 유창한 말의 몸짓 버스는 달리고 버스는 시끄럽고 소통할 수 없는 언어들로 가득한 혼돈의 세상 속 침묵으로 일관된 몸짓 말 잘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저 몸짓으로 세상의 말을 짓는 침묵의 언어 이미 세상에 없어진 말들을 불러 모아 몸짓으로 남아야 할 것들을 써야지 온몸으로 써야지 하는 저 소리들 - 박원희 시집 ‘몸짓’ 소통이 화두가 된 지 오래되었다. 인간이 인간의 입장에서만 볼 때,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소통일 것이다. 그러나 소통을 위해 떠들어대는 이런 저런 시끄러운 소리들이 오히려 불통을 부채질하는 것도 같다. 지금은 막말이든 품위가 있는 말이든, 말 잘하는 것이 때로는 장애가 되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만이 어깨에 힘을 주는 세상. 침묵의 언어는 무시될 대로 무시되는 세상. 가벼운 입술로만이 아닌,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온몸으로’ 진정을 다해 말할 줄 아는 이는 누구인가. ‘아니면 말고’만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온몸으로’ 글을 쓸 줄 아는 이는 누구인
부부로 사는 모든 사람은 행복할까? 만약 부부의 삶이 행복을 보장한다면 모든 사람이 그 삶을 선택할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부부의 삶을 선택하고 있지만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부부의 삶이 혼자의 삶보다 더 힘들고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 이유다. 소우주(小宇宙, microcosm). 동양과 서양, 철학과 과학 등 과거부터 인간을 소우주라 표현한다. 여러 가지 의미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인간을 우주와 비교할 정도로 완전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것에 의해 완전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완전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배우자가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갖고 있다. 혼자가 둘이 되든 둘이었다가 다시 혼자가 되든 우리의 완전함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나의 행복은 나의 책임이다. 현재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배우자의 책임이 아니다. 이것을 잊는 순간 부부 아포리아(난관)에 빠져 힘들어진다. 부부의 삶에서 행복을 기대한다면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한다. 특히 ‘확인’과 ‘인정’은 나에게 주어진
“정말 오랜만이지? 우리 밥 한 번 먹자.” 참으로 오랜만에 전화로 들어보는 친구의 음성은 상기된 듯 낭창거리고 있었다. 어린 날의 추억을 함께 품은 친구였기에 소식 뜸한 동안에도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다. 그렇게 한 삼십 분을 떠들다 전화를 끊은 친구가 열흘이 지난 오늘 ‘평택역’이란다. 정말 한 이십 년 만에 밥 한 번 먹게 되는 것이다. 미리 도착한 커피숍, 키 낮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아기자기한 조명등 사이로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 날, 청송에서 포항에서 부모를 떠나 공부를 하러 온 객지. 나는 혼자였지만 친구는 오빠내외와 조카들까지 함께 살고 있어서 오순도순 잘 지냈다. 나는 늘 왁자한 그 친구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다. 아마도 그 때마다 고향에 두고 온 남매들이, 어머니 아버지가 간절히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시누이의 친구까지 드나들었으니 친구의 올케가 오죽 귀찮았을까 싶어 새삼 얼굴이 붉어지긴 하지만 그 때는 참 눈치도 없이 해맑게 드나들었던 것 같다. 계산 없이 정을 줄줄만 알았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학교를 며칠씩이나 빠졌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오빠 내외가 받는 전화가 어려워
<경찰청> ◇치안감 전보 ▲경찰청 기획조정관 김교태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김규현 ▲경찰청 생활안전국장 강황수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장 남구준 ▲경찰청 보안국장 윤동춘 ▲경찰인재개발원장 황운하 ▲서울지방경찰청 차장 임용환 ▲광주지방경찰청장 최관호 ▲대전지방경찰청장 최해영 ▲울산지방경찰청장 김진표 ▲경기북부지방경찰청장 이문수 ▲경북지방경찰청장 박건찬 ▲경찰청 경무담당관실 김기출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NH농협은행 경기영업본부> ◇지부장 ▲가평군 이학용 ▲구리시 유재호 ▲군포시 김성록 ▲동두천시 이철현 ▲수원시 노종배 ▲양평군 오정수 ▲연천군 이재진 ▲용인시 이의도 ▲의정부시 이시용 ▲파주시 권순옥 ▲포천시 이월선 ▲화성시 김도성 <남양주시> ◇4급 승진 ▲별내동장 김경환 ▲교통도로국장 오철수 ▲산업경제국장 김기용 ▲환경녹지국장 용석만 ▲호평동장 주영환 ◇4급 전보 ▲농업기술센터소장 구형서 ▲진접읍장 이상운 ▲행정기획실장 김승수 ▲복지국장 이군희 ▲진건읍장 이용복 ▲와부읍장 권혁무 ▲화도읍장 박부영 ▲도시국장 우진헌 ◇5급 승진 ▲징수과장 직무대리 이장호 ▲홍보기획관 직무대리 윤선기 ▲자원순환과장 직무대리 문명우 ▲조안면장 직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