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강을 낳고, 강은 숲을 가꾼다.’ 산과 강, 강과 숲. 거기에 공기가 있어 내가 산소를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강 가운데의 섬 같은 산을 하염 없이 바라보았다.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인간의 체온이 종교라는 어느 시인의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예고 없이 찾아온 친구 차를 타고 진안고원 ‘용담호’에서 나는 한동안 언어를 잊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사는지를 모르면 그날그날 아무렇게나 살게 된다는 생각과 함께. 1971년 일이다. 대전고등학교 김영덕 교감선생님으로부터 그의 저서 '나무도 보고 숲도 보고'라는 수필집을 받았다. 책을 호롱불 심지 돋워가며 읽었다. 곧바로 감상문을 써 보내드리며 나도 수필을 공부하며 쓰고 있다고 했다. 그분은 써 논 글을 한 편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농사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좌골신경통으로 허리 다리의 통증을 방바닥을 치며 호소하는데, 소낙비로 인한 빗물은 온 마당을 넘실대고 있는 안타까움을 작품화한 수필을 우편으로 보냈다. 선생님은 나를 초대하였고 나는 처음으로 대전고등학교를 찾아가 인사드리고 하룻밤을 보낸 뒤 돌아왔다. 수필 공부로 맺은 첫 인연이요 은인이었다. 그분의 책을 읽고 보이지 않는 나무
경기도는 지난 3일 발표한 2026년도 본 예산에서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이에 장애인들과 노인들의 반발이 심하게 일고 있다. 경기도의원들도 여야 할 것 없이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지난 7일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제387회 정례회 복지국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복지예산 대폭 삭감이 복지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경기도가 이처럼 비난을 받는 것은 2026년 복지국 예산 편성 과정에서 삭감된 사업이 214건·2240억 원이나 됐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전액 삭감은 64건(240억 원)으로 시군 노인상담센터 지원 10억 원, 노인복지관 지원 39억 원, 장애인지역사회재활시설 지원 26억 원 등이다. 일부금액 삭감은 150건(2200억 원)으로 사회서비스원 운영 지원 62억 원, 경기도형 긴급복지 32억 원,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223억 원, 경로식당 무료급식 및 식사배달 지원 10억 원 등이다.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물론이고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도 복지예산 삭감에 유감을 표했다. 김동규(안산1) 의원은 “150개 사업, 2200억 원 가량 감액됐는데 반드시 지원해야 하는 사업이 대거 포함됐다. 예산 승인까지 시간
어느새 11월이다. 달력을 넘기다 보면 한 해가 참 빠르게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공기는 차가워지고, 해는 짧아졌다. 계절이 깊어질수록 하루하루의 끝엔 잔잔한 정적이 내려앉고 ‘나는 올해를 잘 살아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찾아오는 요즘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올해의 끝자락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나날들을 천천히 돌아본다. 올해는 유난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익숙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했고, 예상치 못한 만남과 감격스러운 경험도 했다. 그 속에서 기쁨도, 후회, 감동 등의 감정도 함께 남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어느새 11월이다. 시간이 점점 빨리 간다는 지겹도록 진부한 말을 공감하며 뱉게 될 줄이야. 물론 지치기도 했지만, 마음 한켠이 따뜻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돌아본다는 것은 단순히 지난 일을 되새기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변했는지, 무엇을 배우고 놓쳤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사람들은 종종 미래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달리지만,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알게 된다. 올해의 나는 작년의 나보다 조금 더 말랑해졌고, 어떤 일에는 더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것만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안양동안경찰서가 국가정보원과 함께 국제공조를 동원해 대규모 마약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마약에 무참히 뚫려 만신창이가 돼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2017년 약 1000명이던 마약사범은 지난해 2만3000여 명으로 폭증했다. ‘한국은 마약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확실한 대책이 절실한데 정부와 정치권은 왜 이렇게 거북이 놀음인가. 나라를 위협하는 액운을 물리치기 위한 결전이 필요하다. 안양동안경찰서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7월까지 특정범죄가중처벌법등에관한법률(향정) 위반 혐의로 태국인 및 한국인 등 조직원 12명을 검거하고 이 중 10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마약 유통 총책인 카메룬 국적의 30대 남성은 지난 9월 30일 태국 현지 마약단속청에 의해 체포됐다. 태국에서 체포된 남성은 지난해 4월과 올해 6월 모두 2차례에 걸쳐 필로폰 36㎏(약 12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을 태국에서 국내로 밀반입하도록 조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남성은 지난해 4월 유통책인 태국 국적의 20대에게 밀가루 반죽 기계에 필로폰 19㎏을 숨겨 국제탁송화물로 국내에 밀반입할 것을
최근 서울 세운상가 재개발을 두고 정부와 서울시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을 불편한 심기로 지켜보고 있다. 지난 7일 최휘영 문화체육부 장관은 종묘를 방문해 "대한민국 문체부장관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인 종묘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 종묘는 조선 왕실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유산이며,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의 상징적 가치를 가진 곳으로, 문화강국 자부심의 원천"이라며 "그럼에도 이러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런 관점에 100% 동의한다. 그런데 가평군에 위치한 중종대왕 태봉의 목을 끊고 지나가는 제2경춘국도에 대해서는 이런 관점이 전혀 적용되고 있지 않다. 경기도는 중종대왕 태봉과 경북, 충남 등에 있는 다른 조선 국왕 태봉들을 엮어 함께 유네스코 문화 유적 등재를 추진했다. 조선 국왕이 살던 왕궁, 그리고 지금 논쟁 중인 조선 국왕의 사후 유적인 종묘가 이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여기에 조선 국왕의 태를 묻은 태봉까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조선 국왕의 생전, 재위, 사후를 모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중종대왕 태봉은 처음
지난 달 29일 경주 APEC 계기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추진 잠수함(이하 원잠) 문제가 공개적으로 제기되면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핵연료 공급 요청에 대해,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한미동맹의 바탕 위 원잠 건조 승인, 그것도 미국내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으로 받으면서 다양한 논점이 제기되어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국제 비확산 규범과 관련해 민감한 이 문제를 한국이 거론한 것은 원잠에 대한 나름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잘 알려졌듯 원잠 보유는 해상 전력 확보 차원에서 참여정부 때 제기된 해묵은 현안이지만 당시 구체적으로 진전되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 간 미국 원잠 구매에 관한 협의도 미국방부 등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미 세계 최고의 원전과 재래식 잠수함 건설 능력을 갖고 소형모듈 원자로(SMR) 등을 선도적으로 개발해 온 한국으로서 자체 건조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원잠 연료는 농축 우라늄이다. 세계적으로 미·영의 원잠은 90% 이상, 러시아는 20~50%의 고농축 우라늄(HEU), 프랑스와 중국은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LEU)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2015년
매일 아침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서다보면 종종 예기치 못한 항의를 받을 때가 있다. “이렇게 큰 개를 왜 입마개를 하지 않습니까?” 나의 반려견은 맹인안내견으로도 많이 활약하는 세상없는 순둥이 래브라도리트리버 종이다. 그럴 땐 정중히 안내드린다. “입마개를 해야 하는 맹견은 법에 지정이 되어있습니다. 도사견, 핏불테리어, 스탠퍼드셔 테리어, 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입니다.” 모두 개물림사고로 뉴스에도 종종 언급되는 투견종들이다. 얼마전 아들이 키우던 핏불 한 마리를 시골어머니에게 맡겨놓았는데 그 어머니를 핏불이 물어 숨지게 한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개가 주인을 몰라보고 광견(狂犬)이 되면 몽둥이 외에는 약이 없다. 미치면 주인도 몰라보는 것이 개만 그렇겠는가? 대장동 사건 항소를 포기하자 검찰의 항명이 거세다. 시작은 서울지검장이었다. 자신이 결정해야 할 항소건을 수뇌부의 지휘에 따라놓고 “내 생각은 달랐다”며 사표를 던졌다. 이어 약속이나 한 듯 검사장들의 집단 입장표명이 뒤따르더니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격. 이제는 지청장, 부장, 심지어 초임검사까지 팔걷어 부치고 뛰어나온다. 알고나 떠들어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올해 1월 공직선거법 위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사업은 인천지역 문화·예술계와 시민들의 숙원사업이었다. 인천뮤지엄파크는 미추홀구 학익동 587의53 일원에 조성된다. 박물관, 미술관, 예술공원 등 복합문화시설이다. 이에 따라 연수구 옥련동에 있는 인천시립박물관은 이곳으로 이전한다. 특히 인천시립미술관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있는 시민들이 많다. 그동안 전국 6대 광역시 중 인천만 시립미술관이 없었다. 이번에 인천 최초의 시립미술관이 생기는 것이다. 시는 지난해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를 신청한 바 있다. 그러나 운영 수지 개선 요구 등을 이유로 반려됐다. 올 4월 재도전하자 행안부는 조건부로 통과시켜 사업이 시작됐다. 인천시립미술관 사전프로젝트의 일환인 미술전문가 연구세미나도 지난 8월 27일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2028년 개관 예정인 인천시립미술관의 정체성과 운영 방향을 구체화하고, 수도권 미술관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인천시립미술관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한 방안들이 제시됐다. 이보다 한 달 전에 열린 지역미술계 연구세미나에서 ‘인천의 정체성’을 논의한 데 이어 ‘느슨한 연대, 수도권 미술관의 새로운 모델 구축’을 주제로 수도권 차원의 협력과 공존 가능성을 모색했다. 토론자들은 현
뉴욕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Z. Mamdani)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일약 정계의 기린아로 등장했다. 불과 34살이고 아프리카 출신의 인도계 이민자이자 이슬람교도이고 사회주의자임을 스스럼 없이 밝힌 그는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지이자 미국의 상징 도시 뉴욕시장이 된 것이다. 맘다니의 승리는 미국판 MZ세대의 지지와 성원 때문이라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전 세계가 보수화되고 특히 젊은 층의 보수화 내지는 극우화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그것도 뉴욕의 젊은 층만은 거꾸로 사회주의자에 투표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10만 명이 이르는 자원봉사자의 열렬한 활동과 경쟁자의 엄청난 선거자금 투입에도 “정치헌금은 이제 그만” 이라고 외치는 그는 진정으로 정치가 돌봐야 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을 풀어내었다. 그가 공약으로 내건 임대료 동결은 살인적인 임대료에 고생하는 서민을 위한 정책이었고 무상 버스와 무상 보육 그리고 자치구마다 상설 식료품점을 뉴욕시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서비스의 확대 등은 한결같이 약자들을 위한 정책이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은 부유세와 법인세 인상으로 해결하겠다는 맘다니의 진정성이 자본주의의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예전에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고향이 어디신가요?” 라고 묻곤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어디 나오셨어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다. 이는 곧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는 뜻이다.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시대에 출신 대학을 묻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특정 대학 출신들이 사회 곳곳에서 집단적 유대와 특권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사회구조의 병폐가 된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2024.8.27.)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로 ‘대학입시 경쟁’을 지목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대학 진학률 격차는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과도한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로 행복도가 낮아지고, 수도권 집중과 주택가격 상승까지 초래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환경이 학생의 잠재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교육기회의 불평등이다. 교육비 부담은 저출산과 결혼 기피로 이어지고,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는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입시 서열화는 곧 학벌사회를 고착시킨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academic clique)은 단순한 학력이 아니라 일종의 ‘신분’처럼 작용한다. 학력은 개인의 노력의 결과이지
위조된 공문서와 공무원을 사칭하는 사기 문자가 소상공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최근에는 연예계 등에서 볼 수 있던 SNS 사칭 계정까지 등장, 그 수법마저 교묘해지면서 피해사례가 그치지 않고 있다. 공무원 사칭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강화는 물론, 먹잇감이 되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경각심을 일깨울 대응 매뉴얼이 폭넓게 공유돼야 한다는 여론이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공공기관이나 공무원을 사칭하는 사기 피해는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사칭 사기 위험성이 높아지자 전국 지자체 및 기관들이 사칭 사기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면서 한때 피해가 잠잠해졌지만, 어느새 수법마저 진화해가며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23일 자신을 경기도종자관리소 소속 공무원이라고 밝힌 사칭범이 도내 한 건설 업체에 농수로 개선 공사계약을 진행하겠다며 위조된 명함 사진 파일을 보냈다. 전송된 명함에는 경기도 로고와 함께 이름과 전화번호, 사무실 주소, 이메일 등이 적혀 있었다. 사칭범은 다른 현장에서 급히 처리할 일이 있으니 다른 업체의 자재를 대신 구매한 후 대금을 송금해달라고 요청했다. 피해 업체는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