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남들처럼 양지바른 곳에다 조상의 유해를 안치하고 떳떳하게 성묘를 지내는 것이 소원입니다.”
고양 금정굴 유족들은 설 명절을 앞둔 8일 낮 12시, 서울대 병원 연구실 창고에서 약주 한 잔을 조상님께 올리며 눈물겨운 성묘를 지냈다.
이는 지난 1995년 고양시 일산 금정굴 현장에서 유해가 발굴된 이후 15년째 매년 명절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금정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국가기관이 나타나지 않고 해당조치가 미뤄지며 유족들의 한(恨)은 쌓여만 갔다.
금정굴학살희생자유족회 마임순 대표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7년 6월 금정굴 사건은 불법 집단살해이며 그 최종 책임은 국가에 귀속된다고 진실규명결정을 내렸지만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국가는 진실규명 이후 3년이 넘도록 유해안치 등의 후속조치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유해를 봉안할 수 있는 추모시설 설치’ 등을 권고했지만 정부의 이행은 지금까지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유족들은 금정굴 현장 주변으로 유골 안장을 요구하고 있으나 관할 지자체에선 묘소 부지가 근린공원으로 지정돼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유족들은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유족들의 애타는 요구를 묵살하며 여전히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며 “학살 이후 60년, 유해 발굴 이후 15년도 모자라 유족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떠안기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한편 고양 금정굴 사건은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고양·파주지역에서 부역 혐의자 및 그들의 가족이란 이유로 153명 이상의 주민들이 불법적으로 집단 총살당한 후 금정굴 수직 갱도 속에 암매장된 일이다.
이후 유족들은 1993년 ‘고양 금정굴 유족회’를 결성해 고양시, 고양시 의회, 고양경찰서 등에 유해 발굴을 청원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유족들은 결국 1995년 9월 자체 발굴에 나서 두개골 70여점을 포함해 유골 780여점을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