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처리를 위해 20일 용인시 처인구청을 찾았던 김모씨는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기다리다 “과장님은 물론 계장님들까지 모두 빠짐없이 시의회에 가셨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직원들에게 제대로 화도 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용인시청과 각 구청이 20일 결제권이 사라진 사실상의 행정공백상태에 빠졌다. 급한 일 처리를 위해 시청 등을 찾은 민원인들의 헛걸음은 물론 경기도와 관련기관들의 연계업무도 뒤로 밀렸다. 당연히 쏟아지는 불만은 남은 직원들이 떠안았고, 행정처리 지연에 대한 우려마저 나왔다.
이유는 시의회청사를 찾는 순간 간단히 풀렸다. 이날 의회청사는 국·과장과 계장들로 가득했다. 특히 시의회청사 3층은 복도와 계단까지 차지한 공직자들로 발디딜 틈 없는 만원사례를 연출했다.
바로 용인시의회의 제174회 임시회 첫날인 이날 추가경정예산 세입·세출 예산안 심의에 간부급 공무원들이 한명 빠짐없이 총출동한 것.
일부 부서는 하루종일 자기 차례까지 대기하다가 시의회 상임위원회에서 “질문하실 의원 없습니까?”란 위원장의 물음 반복이 끝나면 10여초만에 허탈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더욱이 이런 상황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공직자들의 노골적인 불만마저 쏟아졌다.
시민 이모(35·죽전1동)씨는 “업무를 위해 시청을 찾았다가 처리를 하고 싶어도 과장과 계장이 없어 해줄 수 없다는 대답을 수도 없이 들었다”며 “공직의 특성상 국장이 출동하면 과장과 계장들까지 우르르 몰려갈 수밖에 없다는 공직자들의 말이나 전 간부 공무원을 시의회에 몰아놓는 것이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직자 A씨는 “연말을 맞아 다급하게 처리해야 할 민원과 업무가 산더미같은데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시민의 대의기관인 시의회의 일정에 맞춰 전 간부공직자들이 자리를 비운채 마치 죄인처럼 대기해야 하는데 결국 시민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공직자 B씨는 “집행부 입장에서야 시의회가 찾으면 처리하던 업무도 뒤로 미룬채 달려가서 눈치를 봐야 하는 게 하루이틀이냐”며 “해마다 늘 반복되는 풍경에 대한 개선책은 커녕 민원인들의 발길을 돌리게 해 불만을 야기하는 이런 의회 운영은 하루빨리 고쳐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의회 관계자는 “추경 예산안 심의는 시의회 본연의 업무로 시청과 각 구청, 사업소 담당들이 참석한 것”이라며 “담당 부서에서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자리를 지킨 것이지 시의회가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