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노병의 간절한 염원 한가지 다시는 이땅에 비극 없기를

 

경남중고 3학년 재학 중 6·25 전쟁 발발
육군 보병학교 입교… 낙동강 전투 참가
1952년 6사단 수색연대 소대장 맹활약
교암산 주둔 매일 교전 치열, 적 침투 저지

1953년 7월 휴전 협정 앞두고 적들 대공세
아군 무질서 철수… 수색조 12명 구사일생
휴전 8일전 462고지 공방전, 끝내 고지 사수



정전 60주년 경기신문·인천보훈지청 공동기획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1.백낙오 옹 : 휴전 직전 중부전선 전투


한국과 중국, 일본이 최근 이어도 지역의 항공식별구역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여기에 21세기 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위험지역으로 한반도가 지목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는 외세에 의해 극심한 이데올로기 대립과 동족전쟁의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이에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바라며 경기신문 인천본사와 국가보훈처 인천보훈지청은 정전60주년 기념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공동기획하게 됐다. 6·25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한 교훈 삼아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원한다.

백낙오(83) 옹은 경남중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보병학교에 입교해 낙동강 전투에 참가했다.

이후 1952년 3월 제6사단 19연대 수색연대 소대장으로서 육군소위 계급장을 달고 중부전선 최돌부 교암산 후산면에 주둔하며 매일 오리동 개활지의 적정수색 및 잠복근무로 금성개활지에서 끊임없이 교전을 벌이며 적의 침투를 저지했다.

이번 전투사는 중부전선에서 벌어진 휴전 직전의 치열했던 상황이다.

- 교암산 지구 전투 : 1953년 7월10~15일

- 오리동 지구 전투 : 1953년 7월16~25일

- 462 고지 전투 : 1953년 7월19~25일

1953년 5월 휴전에 대한 얘기들이 장병들에게 널리 퍼졌으나, 적의 공세는 쉼없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수색소대는 인접 제8사단의 일부와 제5사단의 주저항선 일대에서 밀고 밀리는 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적들은 차기작전에 유리한 전초진지를 탈취하기 위해 1개월간의 공세를 취했으나 한 개 한 거점도 탈취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해 6월에 들어서며 일반적인 적의 행동이 표면상으로는 소극화되고 전투접촉면은 경미해진듯 했으나 전투소식은 널리 퍼져있다. 적들의 7월 대공세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끝났음을.

우리도 적의 대공세에 맞춰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고 있었다.

그해 7월 휴전 협정 조인을 앞두고 적은 금성지구 돌출부 교암산을 확보함으로써 전투의 평행선을 이루고 요지요부 장악을 위하여 중공군 제67군하 제200사단, 제201사단, 제 99사단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12일 새벽 4시부터 개시했다.

2시간이 흐른 오전 6시 적진에서 수색활동을 마친 후 적의 대대적인 공격을 알기 위해 교암산 숙영지를 둔 제19연대 수색중대에 긴급 복귀 중이었다.

관찰병으로부터 19연대 중대원 전원이 포위되어 포로가 되는 것이 보고됐다.

긴급 회귀명령과 함께 수색조 12명을 데리고 은밀이 제2의 회귀지점인 제3대대 관측소로 구사일생으로 철수했다.

당시 적의 대대적 공세로 오리동 개활지는 주저항선에서 방어 중이던 아군병력이 밑물같이 쏟아지며 무질서한 철수가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병목지점에 갇히며 최종방어선을 유지한 채 철수를 하지 못하면 많은 인명피해와 더불어 적의 포로가 될 상황이다.

이때 중공 팔로군은 군마에 기관총과 박격포를 매달고 신속히 이동하며 국군 철수병을 계속 위협 사격했다.

우리 수색조는 다행히도 유성원씨가 대대장으로 근무하던 제3대대를 만나 합세해 추격해오던 중공군을 저지함으로써 다소 질서가 유지되는 철수가 이뤄졌다.

드디어 7월13일 12시 본격적인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14일 연대집결지 ‘주파리’에 집결해 부대 정비중에 인원파악을 해보니 다시 수색중대장 장재건 대위와 수색중대 부관 정재옥 중위를 비롯한 수색중대 전원이 포로로 잡히고 우리 수색소대 중 수색조 12명만 구사일생으로 생환했다.

우리 소대는 잠복 수색에 들어가 3일간 일체의 행동도 하지 않았다.

18일 야음을 이용해 백암산 정찰을 명받고 수색도 12명을 인솔 명일의 공격중비를 위한 수색을 진행했다.

수색결과 백암산에는 적이 철수하고 제5사단 병사가 울고 있는 것을 구출하여 후송했다.

19일 부대 재정비에 나선 국군은 4시를 기해 반격 공격을 실시했다.

이 때에 불필요한 전투력 소모를 방지하고 즉시 백암산 점령 금성천과 북한강이 교차하는 요지 요부인 462고지 공격을 감행 수차례의 공방전 끝에 고지를 최종 사수했다.

이후 27일 오전 10시 3년1개월 전투가 끝나고 정전 협정이 조인됐다.



 

내가 체험한 6·25전쟁


가만히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싶었던 학생이 오직 조국이 불렀기 때문에 전쟁에 참가했다.

사람이 사람을 향해 그것도 내 동족 형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그 마음이 누군들 편하겠는가?

세상 어느 누구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있을까?

전쟁에 나선 자 중 자신의 생명이 소중하지 않은 자가 있는가?

다시는 이땅에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전쟁이 주는 아픈 고통.

그래서 이 땅의 평화가 그 시대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아니었을까?

노병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시는 이땅에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그렇기에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의 평화를 위해 전장에 나서야 했던 시대의 역설과 비극 앞에 앞서간 내 전우들의 삶이 지금의 평화의 근본임을 잊지 말기를….

전쟁에 나선 자 중 자신의 생명이 소중하지 않은 자가 있는가?

다시는 이땅에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전쟁이 주는 아픈 고통.

그래서 이 땅의 평화가 그 시대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아니었을까?

노병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시는 이땅에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그렇기에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의 평화를 위해 전장에 나서야 했던 시대의 역설과 비극 앞에 앞서간 내 전우들의 삶이 지금의 평화의 근본임을 잊지 말기를….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