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라는 말은 라틴어의 ‘dement’에서 유래된 것으로, ‘마음에서 벗어 난’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지적 능력이 모자라는 경우를 ‘정신 지체’라고 부르는 반면, 치매는 정상적으로 생활해 오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으로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이전에 비해 기억력, 언어 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 판단력 등 다양한 인지 기능이 지속적으로 저하돼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보이는 상태를 일컫는다.
과거에는 치매를 ‘망령’, ‘노망’이라고 부르면서 노인이면 당연히 겪게 되는 노화 현상이라고 생각했으나, 최근 많은 연구를 통해 분명한 뇌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보건산업진흥원의 ‘주요 질환별 R&D 조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국내 치매노인 인구는 53만명(전체 노인인구의 9.1%)으로 2008년 42만명 대비 약 26.8% 증가했으며, 2025년에는 1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치료방법에는 주로 약물이 사용되지만, 비약물 치료법도 존재한다. 이 중 하나가 치매미술치료다.
치매로 인지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현재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기회를 줘 본인의 능력에 따라 선, 색, 형태를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요법으로 성취감과 편안함, 정서적 안정을 얻게 함으로써 지적활동과 인지적 수행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치료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따뜻한 정(관심)과 진솔한 마음(사랑)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자신의 자비를 털어가며 인생의 절반을 치매미술치료에 바친 선구자인 신현옥(62) 한국치매미술치료협회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솔직하게 돈도 안되고 가족조차 하기 힘든 일을 왜 하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에게 행복을 느끼고 사람에게 불행을 느끼는 것처럼, 치매를 앓으시는 어른들의 삶과 함께 하면서 더 없는 행복을 나눠 가집니다. 마지막 기억이 소진하고 체력이 소진해 가는 한 인간의 삶 곁에서 살을 부비고 체온을 전해주며 함께 하고 있음을 전해주는 것이 진정한 노년의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까요. 다시 태어나도 나는 주저 없이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러한 그를 치매 어르신들과 이웃 주민들을 위한 만남·대화의 장소로 개방한 세류2동 소재 집에서 만났다.
◇휘어진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에 대한 애정
신 회장은 자신이 ‘나쁜 딸’이었다고 고백했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또 성당에 나가 봉사활동도 하는 자신의 어머니가 ‘노망’이 나신 것이 다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주변의 시선이 무섭고 두려워 두문불출하고 그림을 그렸죠. 어찌 보면 상처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오늘도 마리아 어머니, 딸 옷을 입고 나와 돌아다니시더라’, ‘어머니가 이런 상태인데, 성당 일을 볼 수 있냐’ 웅성웅성되는 소리가 너무 싫었어요.”
그가 그림을 그릴 때 어머니도 옆에서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는 어머니에게 그림 그리는 방법을 조금씩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갔고, 결국 어머니는 그의 곁을 떠났다.
홀로 2층 집에 누워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던 그는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깨닫게 됐다.
“분명 어머니는 초기보다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어요.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제가 깨닫지 못한 것뿐 이었죠. 기억력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지셨는데, 왜 깨닫지 못했을까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알았다면 따듯한 말 한마디라도 해드렸을 텐데...”
그는 자신이 어렸을 적 어렴풋한 기억 중 하나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어머니가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다가와 다린 옷을 두고 풀이 묻었다며 마당에 옷을 내다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며칠이 지난 후 부엌에서 인삼을 넣은 약을 달이고 곰국을 정성스레 끓여 할아버지 식사 때마다 드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으셨던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신 거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잠시 의식을 찾았을 때 어머니의 손을 쥐고 ‘그동안 수고가 많았고, 고맙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돌아가셨어요.”
그는 이러한 모든 기억과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껏 치매미술치료 일을 하게 되는 작은 씨앗이 되지 않았나 상기해 본다.
신 회장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새알 초코릿 3개를 들고 다니며 치매 어르신들을 찾아다녔던 것처럼 오늘도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어르신들의 기억을 끈을 잡아 주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세상에 없지만, 그림을 매개로 아름다운 추억과 동행하는 동반자가 된 수많은 새로운 부모들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뜻 있는 단체와 기관들의 많은 관심과 많은 치매미술치료 교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을 거듭해 왔다.
1999년에는 고령화 사회 노인질환의 치료와 예방을 위한 치매미술치료협회를 세계 최초로 설립했으며,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을 돌며 어르신들의 작품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또 어르신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자,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치매미술치료협회 부설 영실버아트센터에서 자살예방·성 상담, 문화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슈가 있을 때만 반짝 관심은 안 돼... 청와대에서 어르신 작품 전시하고파”
“치매는 우리의 생활에서 그리 먼 타인의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치매는 사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질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닌 꾸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신 회장은 치매에 대한 일반사람들의 의식이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람들이 치매를 매우 어려워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치매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치매는 그리 어렵고 곤란한 질병이 아니라고 한다.
“치매는 현재의 나를 잊고 과거의 자아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해요. 치매를 앓으시는 분은 과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므로 어떤 의미에서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치매를 본다면 치매미술치료는 특별한 교육이나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경험이 중요하며, 특히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소통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려고 힘든 것일 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을 자신의 자비로 30년 넘게 하고 있는 신 회장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 처럼 도움 없이 홀로 이끌어 가다 보니 빚도 3천만원가량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어르신들이 그린 작품을 계속해 모으다 보니 장소가 비좁아 매월 25만원씩 내는 창고도 빌렸다.
그에게 정말 바라는 점을 물었다.
“제가 바라는 점은 딱 2가지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치매 어르신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것과 현재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장소가 지역의 자살예방센터로 지정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약간의 욕심을 내자면 참된 기부자가 도움을 준다는 것. 이 작은 소망이 진정으로 이뤄지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글ㅣ김장선기자 kjs76@kgnews.co.kr
사진ㅣ오승현기자 osh@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