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세기 유럽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시에나 등의 이탈리아 도시와 그 상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
이탈리아 상인들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험준한 알프스 넘어 있는 샹파뉴 정기시부터 악천후로 인한 난파와 해적의 위험이 상존하는 지중해의 거친 바다를 뚫고 도착한 이슬람과 비잔티움 세계, 실크로드의 흙길을 따라 당도한 몽골제국의 수도 대도, 페르시아 만을 경유한 향신료의 산지인 인도 남부까지 거래를 위해 이들이 가지 못하는 길이란 없었다.
책은 이들의 장구한 여정을 좇아 그들에게 씌워진 찬양과 비난의 실체를 추적한다.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그들은 한편으로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상업과 은행 기술을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업·은행·정보 그리고 근대적 은행제도,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산업을 발전시킨 모험정신과 혁신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권력과 결탁해 상업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킨 일개 장사꾼이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확실한 것은 이들은 환어음이라는 새로운 상업기술을 기반으로 물류와 자본의 흐름을 주도하고, 복식부기를 이용해 자본과 상품의 이동을 효과적으로 조직한 근대 자본주의 기업가의 시초라는 점이다.
책은 12세기 순회상인과 13세기 모험상인, 중세 말 전문상인을 다루며 9장의 쳅터로 구성돼 있다.
1장은 12세기 베네치아 상인 로마노 마이라노에 관한 것으로, 비잔티움제국과 시리아의 라틴 왕국,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도시를 누볐던 상인의 진취적 기상과 모험 정신을 다룬다.
2장은 12세기 제노바 정·재계를 주름 잡은 귀족 출신의 투자 상인 인고 델라 볼타와 그 세력들, 3장은 환어음이라는 새로운 상업기술을 기반으로 상파뉴 정기시를 오가며 장사했던 13세기 시에나 출신의 톨로메이 상사, 4장은 종교적 금기를 깨뜨린 베네치아 상인들의 이야기를 각각 담았다.
5장은 몽골 평화시대 이윤을 찾아 먼 아시아 땅으로 갔던 제노바와 베네치아 상인들의 관한 비사(秘史), 6장은 14세기 초반 국제적인 거상으로 성장한 피렌체 페루치 상사의 성공과 파산 이야기, 7장은 중세 말 명반 무역을 주도했던 제노바 명반 상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8장은 15세기 베네치아 소란초 형제상회의 면화 장사 이야기다. 복식부기를 이용해 자본과 상품의 이동을 효과적으로 조직한 소란초 형제상회는 근대 자본주의 기업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인 9장은 중세 이탈리아 상인 중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긴 프라토 상인 프란체스코 다니타에 관한 것이다. 그의 삶은 사업적 성공과 부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모두 얻고자 했던 당시 이탈리아 상인들의 간절한 소망을 느끼게 해준다.
/김장선기자 kjs76@